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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흰 쥐처럼 살아도, 검은 쥐처럼 살아도

2019-12-24
[CEO 칼럼] 흰 쥐처럼 살아도, 검은 쥐처럼 살아도

쥐 얘기 좀 하자.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다. 경(庚)이 흰색을 뜻하여 ‘흰 쥐’의 해라고도 불린다. ‘흰 쥐’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한다. 우리 엄마도 쥐띠다. 그런데 경자년이 아닌 병자년 쥐띠, 1936년 생이다. 그러니까 검은 쥐다. 신년에 84세가 된다. 검은 쥐는 할 일이 많고 부지런하다더니 엄마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특별히 관심 받을 이유도 없는, 아홉 형제자매의 중간으로 태어나, 중학교 2학년(1950년) 때 한국전쟁을 겪었고, 미처 졸업도 못한 채 20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왔다. 엄마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필자의 할아버지는 본부인과 첩을 한집에 데리고 사셨다. 어디 시앗보고 편한 집구석 있던가? 할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두 할머니는 언제나 일촉즉발의 전시체제였고, 그 불똥은 예외 없이 엄마에게 떨어졌다. 특히 시집와서 5년간은 아이도 낳지 못하더니, 이후 연달아 딸만 셋. 그러니 얼마나 안성맞춤인 화풀이 대상이었겠는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물 떠 놓고 기도한 끝에 아들 하나 뒀다. 엄마는 그 아들을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얼마나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겠는가?

15년전, 건물 몇 채를 포함해 적지 않는 재산을 남기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즉시 딸들과 사위들을 불러모았다. ‘재산포기 각서’ 쓰라고. 출가외인에게 재산을 줄 수 없고, 외아들에게 단독 상속시키겠다고 선언하셨다. 어차피 남동생이 엄마를 모셔야 하니, 딸들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런데 그 많던 재산이 다 없어지는데 10년여 남짓. 서울 강남에 200평 단독주택에 사셨던 엄마는 지금 남동생 식구들과 작은 전세 아파트에 사신다. 출가외인 딸들은 애만 탄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에도 흰 쥐, 검은 쥐가 나온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

한 나그네가 위험한 광야를 홀로 지나가는데, 햇볕은 내리쬐고 목은 타 들어갔다. 이때 사자가 잡아 먹으려고 나타났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줄행랑을 치다 마른 우물로 뛰어 내렸다. 다행히 한참을 떨어지다 가냘픈 나뭇가지에 턱 걸렸다. 발 밑에서는 수많은 독사들이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위로는 사자, 바닥엔 독사들. 진퇴양난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렸다. 우물 벽 사이로 흰 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들락거리며 나그네가 겨우 의지하고 있는 나무의 밑동을 갉아 먹는 것이었다. 여기서 흰 쥐는 낮, 검은 쥐는 밤을 뜻한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사자 피하고 독사 피하면서 평생 낮과 밤, 흰 쥐와 검은 쥐 드나들 듯 시간이 다 소진되고 나면, 결국 매달렸던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인생은 끝이 난다는 것이다. 필자 방식으로 정리하자면, 흰 쥐처럼 영리하게 살아도, 검은 쥐처럼 부지런하게 살아도, 인생은 요지경 속이다.

맏딸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2020년엔 필자가 엄마를 모시겠다고 나섰다. 치매 증세가 보인다고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겐 33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이젠 친정 엄마 모실 차례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오히려 분란만 일으켰다. 도처가 지뢰밭이다. 엄마는 당신 고생은 괜찮으니, 대신 남동생의 아들과 딸의 교육을 책임져 달라고 한다. 남동생은 체면상 엄마를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여동생들의 의견도 통일이 안 된다. 시댁 식구들은 은근히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으면 하는 눈치다. 혹 떼려다 혹이 붙었다. 솔직히 필자도 치매 노인은 자신 없다. 모두가 마음이 불편하다.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어느 집안인들 완벽하게 행복하겠는가? 2019년이 이렇게 저문다. 그래도 2020년에 희망을 걸어본다. 주어진 삶의 무게이니 어떻게든 또 풀어봐야겠다.

영남일보 독자 여러분들! 괴로움은 털고, 2020년 행복하세요.

김행 (소셜뉴스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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