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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장우석의 電影雜感 2.0] 故 이강길 감독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애통하며

2020-01-31

터전 지켜내기 위해 담은 반핵·환경문제…영화로 바꾸려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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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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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하여'(2006)

경자년 새해 벽두 뜻밖의 부고를 받았다. 설날인 지난 25일 새벽 이강길 영화감독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사인은 급성 백혈병. 병원에 입원한 지 4일 만의 비보였다. 향년 53세.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었는데. 너무나 황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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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강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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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야만의 무기'

이강길 감독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면서 1993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설립한 일본영화학교에서 촬영을 전공했다. 1999년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에 들어가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한창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2007년 7월 제5회 대구평화영화제에 이 감독의 작품 '살기 위하여'를 초청하면서 GV(감독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를 찾은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GV에서 들려준 어떤 일화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같은 해 8월 당시 그가 자문을 맡고 있던 제4회 부안영화제에 영화제 스태프들과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 기록들이 동행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기사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후 2010년 물레책방을 열고 2011년 3월 '야만의 무기' 공동체 상영회를 대구에서 처음으로 열었다.

'살기 위하여'(2006)는 새만금 간척 사업에 반대하는 전북 부안 계화도 주민들의 싸움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이강길 감독의 작품 가운데 유일한 극장 개봉작이다. 계화도 주민들의 요청으로 길어야 3개월 정도 예상하고 서울에서 내려갔다가 10년을 눌러앉아 기록한 '어부로 살고 싶다' 연작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연작을 만들면서 '카메라를 든 어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생활과 작업이 일치된 상태에서 완성된 작품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감독 스스로 "일하다 힘들면 슬쩍 카메라를 잡았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새만금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온 소중한 결과물이다. 이 작품으로 이 감독은 2007년 국제환경영화제와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독불장군장을 받은 데 이어 2008년 제10회 교보생명 환경문화상 환경예술부문 대상까지 수상한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주민 투쟁
장편 다큐멘터리 '살기 위하여'
이강길 감독 유일한 극장 개봉작
국제환경영화제 賞, 호평 잇따라

핵폐기장에 맞선 '야만의 무기'
"정치·자본 결탁한 사악한 마음
핵폐기물보다 나쁜 대중의 적"

유작 '설악…' 케이블카 추진과정
각종 난개발과 환경 파괴 현장
몸 혹사시키며 카메라에 담아내



'야만의 무기'(2010)는 2003년 전북 부안군 위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위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정부와 '핵자본'에 맞선 부안군민들의 투쟁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다뤘다. "영화를 통해 야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 감독은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사악한 인간의 마음이 핵폐기물보다 더 나쁜 대중의 적"이라고 강조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 자신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를 줄 수 있는 내레이션을 넣지 않았다고. 2011년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부문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극장 대신 수많은 공동체 상영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거리 속 작은 연못'(2014)은 가수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에서 제목을 착안한 것으로 서울 금천구의 노점상들이 모여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공동체라디오 관악FM을 방문한 전국노점상총연합 금천지부 회원들이 라디오방송을 체험하고 공동체라디오를 설립하는 이야기. 이 감독은 이 작품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고 싶었다고.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2019)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재추진 과정을 5년 동안 담은 작품으로, 지난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던 이 영화가 이강길 감독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이 감독은 찬반 측의 첨예한 대립 상황을 보여주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과연 지역 주민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환경 파괴가 실제로 얼마나 예상되는지를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을 착취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속성과 자연을 보전해야 하는 환경주의의 반목은 이 땅에서의 삶의 조건을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의 평이 이 감독의 부재를 더욱 아프게 한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난해 9월16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를 최종 '부동의'하면서 중단된 상황이다.

이강길 감독의 요절은 박종필·이성규·박환성 감독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돌보지 않고(혹은 못 하고) 몸을 혹사시키며 현장을 지키고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을 얼마나 더 무력하게 잃어야 할까. 오죽하면 이강길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노환으로 죽은 장례식장에서 보자"는 동료들의 이야기가 나왔을까. 이강길 감독 역시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했던 말이 "몸을 좀 챙기면서 일을 할 걸 그랬어요" 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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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다큐멘터리 작업은 지난하고 고된 일이다. 유튜브 같은 영상 기반 플랫폼이 큰 인기를 모은다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교보생명 환경문화상 환경예술부문 대상을 받으며 이강길 감독이 남긴 수상소감을 공유하고 싶다. "총체적 환경파괴에 놓인 이 땅은 이제 더 이상 사람과 환경이 공존하는 곳이 아닙니다. 거대한 방조제와 각종 난개발에 온갖 수식어를 붙여 찬양하며, 모든 것을 자본의 가치로 환산하고 뭇 생명과 터전을 일구며 사는 주민들의 고통과 죽음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인간중심의 사고와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한 채 앞으로 다가올 환경의 역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새만금과 같이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뭇 생명만이 아닌 우리 모두이며, 그 결말은 우리의 생존까지 내던져진 비참함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저의 믿음이 변함없는 한, 미약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정작 그 세상을 살아보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간곡하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이강길 감독이 쉬고 있을 분당 메모리얼파크에 다녀오고 싶다. 강길이 형, 잘 가요!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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