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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장이 500년 만에 처음으로 휴장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엿새간 모든 상가의 셔터를 내렸다. 수차례 화재가 나고 사스와 메르스 공포가 번져도 완전히 문을 닫지는 않았던 서문시장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이라는 질병재난을 당해내지 못해 장사를 포기한 것이다.
서문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대구경북 사람들의 희비애환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큰 장의 역사는 영남대로가 경상도와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 구실을 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래됐다.
조선시대에 영남대로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와 괴나리봇짐을 짊어진 보부상들의 왕래가 빈번한 길이었다. 대로의 요충지에 자리 잡은 대구에는 영남지역 문사(文士)뿐만 아니라 전국 팔도에서 장인과 장사꾼들이 모여들었으니, 이를 따라 상거래 장소로 등장한 것이 서문시장의 전신인 대구장이었다. 영남 내륙의 물산 집합소 구실을 한 대구장은 '너무 넓어서 못 본다'는 노래구절이 나올 정도로 성장했고, 광복 후 산업화 초기만 하더라도 전국 직물 도소매업의 메카로서 상권이 호남까지 뻗쳤다.
오늘날 서문시장은 빽빽이 들어찬 의류 원단, 한복, 그릇, 액세서리, 이불, 건어물, 잡화가게 등에다 국수, 만두, 순대, 닭갈비, 떡볶이, 어묵, 도토리묵, 메밀묵, 수제비 등을 파는 노상가게로 손님들이 북적인다. 중동이나 인도나 중국 전통시장에 비해서는 규모가 다소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위풍당당함이 느껴진다.
서문시장 골목골목과 점포들은 둘러볼 만하다. 그래서인지 평소 큰 장을 찾은 방문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있다. 특별할 게 없는 현대식 외관이고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물건을 진열한 곳이 아닌데도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소문난 상점과 이 건물 저 건물을 열심히 뒤지고, 잠시 숨을 돌려야겠다 싶으면 실내외 카페나 식당 의자에 걸터앉는다.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대구경북은 호국충절의 고장이자 국가 산업화를 이끌었던 경제신화의 땅이다. 사람들은 그걸 기억한다. 우뚝하고 웅장한 기상, 굽힐 줄 모르는 의지, 거친 풍파를 헤쳐나가는 도전정신과 희생 헌신의 역사, 담백하면서 심오한 문화, 풍요롭고 비옥한 들녘을 알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에 들어선 서문시장에는 이러한 신화와 인문자연이 숨어있는 듯하다. 정치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대구경북의 민심과 살림살이를 살피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이곳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문시장은 그런 곳이다.
다행히 500년 만의 첫 휴장에 들어갔던 서문시장이 며칠 전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아직은 불 꺼진 점포가 훨씬 더 많고, 장사를 재개한 가게라 하더라도 손님 없는 개점휴업이 여러 날째 이어지는 모양이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난리통에 큰 장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생겼다. 대구경북 살림살이 동향을 미루어 짐작게 하는 서문시장 사정이 이 정도이니, 지금의 감염병 사태 속에서 우리 지역이 직면한 경제·사회적 상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체 업종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 등 서민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파괴적이다. 시·도정이 감당해야 할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먼 데서까지 우리를 잘 지켜보고 있다는 점일 게다. 실제로 일부 외신에서는 초대형 재난 중에 사재기와 무질서 없이 평온한 대구경북 시·도민의 일상적 대응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큰 장이 휴장할 만큼 힘든 현실이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은 의연하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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