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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제현〈훌라 프로모터〉 |
오랜만에 삼겹살을 먹었다. 어릴 때는 고기를 먹는다고 하면 마냥 설레고 기뻤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달리 치킨은 물론이거니와 고기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식사메뉴가 고기로 정해지면 죄책감에 가슴이 짓눌린 듯 답답해진다. 각자 따로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이라면 고기를 피하지만, 그런 선택권이 없다면 '다른 식당에 가자고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타협해버린다.
나는 비거니즘을 지향한다. 이렇게 단언하기 참 부끄럽지만. "돼지야, 미안해." 불판 위에 삼겹살을 올릴 때 그저 죄책감을 덜기 위해 뱉은 이기적인 말에 질문이 돌아왔다. "우리가 먹어주지 않으면 돼지가 태어난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명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은 유의미한 존재일까. 채집 생활 시대 인간은 자연 안에서 순환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반면 문명사회 특히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그저 자연을 파괴하는 주역일 뿐이다. 인간이라서, 돼지라서 그 생명의 의미를 달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고기'이기 이전에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음식에서만의 문제도 아니다. 모피제품, 화장품, 동물 체험장 등 인지하지 못한 많은 부분에서 동물은 그저 원료나 실험체, 오락거리와 같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거니즘은 단순히 채식주의만을 뜻하지 않는다. 엄격한 의미의 비거니즘은 동물을 착취하는 모든 것을 반대하는 철학이자 운동이다.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면서도, 고기조차 과감히 끊지 못한 나는 입만 산 비겁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비거니즘을 지향한다고 단언하겠다. 나의 삶이 어떤 희생 위에서 성립되고 있는지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그 희생을 줄여가겠다는 의지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나와 같이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며, 그 범위를 확장해갈 나약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부끄럽기만 한 비겁한 변명을 마친다.
나제현〈훌라 프로모터〉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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