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정민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
드라마에서 큐레이터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종종 묘사된다. 젊고 자신감 넘치는 부잣집 사모님의 단골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 비현실감에 '방송작가 친구 중엔 큐레이터는 없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간혹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생소한 상대방에게 설명을 할 때면 "와~신기하다, 멋지다" 같은 감탄사로 으레 마무리된다. 그런데 드라마와 현실은 조금 다르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미술계에서 전문 인력이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구성하는 주 업무 외에도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까지 큐레이터가 갖춰야 하는 역량의 폭이 크다.
내외부적으로 수많은 사람과 일을 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각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알아서 해 주세요'란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조율하고 선택한다.
다양한 업무 속에서 멀티 플레이어가 되리라는 포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오늘도 무사히'를 속으로 외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독립 큐레이터나 갤러리 큐레이터와는 달리 미술관 학예사는 행정업무와 친해지는데 절대적 시간 또한 필요하다. 세련된 옷차림 대신 쿠션감 좋은 운동화를 신고 전시장과 사무실을 하루 2만보 이상 걸으며 가끔 축지법도 쓴다.
야근 동반자는 인생의 동반자마냥 소중하고, 비슷한 시기에 전시개막을 앞둔 큐레이터 간에는 일종의 전우애도 싹튼다. 출근길 부스스한 얼굴로 마주치면 눈만 봐도 이심전심이다.
그 눈빛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 "오늘도 파이팅"이 포함되어 있다.
빙산의 일각, 그 아래 거대한 빙산의 본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 일은 그러나 분명 멋지다. 다양한 작가와 교류하고, 작품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한 번도 완독한 적 없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10여 년 만에 다시 펼쳐 작품을 재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전시를 통해 마냥 흘러가는 이 시간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작품을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된다. 어린 손녀에게 들려주던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마음 속에 파랑새 한마리를 선물하는 일이라 나는 믿는다. 빙산의 본체는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이정민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박진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