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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진흥원·독립운동기념관, 봉오동·청산리전투의 영웅들 재조명

2020-08-15

독립군 주제 특별전시 진행

경북인들의 망명·애국 다뤄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공동 홍보를 기획·추진한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은 14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기념관 석주홀에서 제75주년 광복절 및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 기념 '일어나라 독립군들아! 함께하라 독립군들아!'라는 주제의 특별전시를 진행한다.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소개한 편집 영상과 독립군가를 들어볼 수 있는 체험시설도 마련돼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스토리테마파크'에서는 '백하일기'의 내용을 소개하고, 경북인들의 망명과 생활을 다룬 코너 '이역만리에서의 독립운동'에선 경북인의 만주 망명의 생생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독립군들이 사용한 무기의 3D 멀티미디어 자료도 검색을 통해 볼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경북의 수많은 명문가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만주 등 국외로 망명했다. 안동 임청각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안이 대표적이다. 경북인들은 주로 서간도 지역에 정착해 척박한 만주 땅을 개척하는 고난을 겪으며 한인 동포의 삶을 안정시키고 독립군을 양성했는데, 백하 김대락의 일기(백하일기)에서 그 단편을 볼 수 있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서간도에서는 신흥강습소(이후 신흥무관학교 개칭)를 세우고 백서농장을 만들어 약 3천5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1919년 국내외에서 3·1운동이 발발하고, 이후 서간도에서는 민정부의 성격을 띤 한족회가 형성, 군정부로서 서로군정서가 조직됐다.

서로군정서는 독판 이상룡·법무사장 김응섭·학무사장 김형식· 참모부장 김동삼 등 경북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었는데, 특히 북간도에서 조직된 북로군정서와 긴밀한 협조를 한 흔적이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남긴 '석주유고'엔 당시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이 교관을 파견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귀서(북로군정서)와 본서(서로군정서)는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이기 때문에'라고 해 교관 파견 요청에 응하는 내용의 편지글이 수록돼 있다.

독립군의 노력은 1920년 봉오동·청산리전투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일제의 무단과 폭력에 항거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이루기 위해 헌신한 우리의 독립군들이 일궈낸 쾌거였다.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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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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