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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 토크] '나를 구하지 마세요' 정연경 감독

2020-09-11

대구 낙동강 발견

가슴 아픈 母子사건

무책임한 어른 탓

감당하기 힘든 상처

생명권마저 박탈

단 한명의 아이라도

더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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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대구에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다. 엄마를 따라나섰던 11세 소년이 낙동강 하류에서 엄마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 건 집에서 발견된 아이의 메모였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내가 죽거든 색종이와 십자수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가 메모를 쓰고 또 엄마를 따라나설 때 심정이 어땠을까.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큰 충격을 받은 정연경 감독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못난 어른이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또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의 고통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불행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정연경 감독의 첫 장편영화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해 나가는 한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떠난 아빠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은 암담한 현실의 엄마(양소민)와 12세 소녀 선유(조서연)지만 그들의 발걸음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아이의 시선으로 영화 이끌어 가면서 심리 묘사 잘 하는것이 중요한 과제"

▶선유는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조차 부질없다고 생각하는(듯한) 12세 소녀다.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지닌, 그래서 또래보다 일찍 철들어 버린 그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아이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면서 그 심리를 잘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아이들이 어떤 순간에 상처를 받는지, 또 어떤 순간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지 아이들의 감정을 관객들이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어른 중심적인 판단으로 아이들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우리를 웃게 만들고 힘을 내게 만드는 무언가가 늘 우리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선유가 슬퍼한다 싶으면 친구인 정국(최로운)이 나타나 그 슬픔을 집요하게 방해한다. 슬픈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웃음이 나오며 슬픔을 잠시 잊는다. 그러는 동안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정국이 선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관객들의 슬픔도 방해하고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픈 선유를 웃게 하는 친구 정국 순수한 위로가 어른의 부재 채워"

▶악인은 없지만 답답할 정도로 나약하고 무심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이 등장한다. 그 빈자리를 어린 정국이 순수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선유에게 위로를 전하며 어른들의 부재를 대신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 건 어떤 마음이 작용한 건가.

"사실 비극과 슬픔에 빠진 주변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현실이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 캐릭터에는 그런 고민과 나의 부족함들이 반영되어 있다. 선유의 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배려는 때로는 당사자에게 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선의가 있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참 어렵다. 내가 힘들 때 무엇이 나에게 힘을 주는지 생각해보니 나의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을 보고 있으면 그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또 나를 엄마라는 이유로 아무 조건없이 좋아해준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선유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으면 그 순간 다른 고통은 잊고 다시 아이답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위로를 받으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전히 OECD 자살 1위 국가 오명 자녀 동반한 비극 충격적 사회 현실 안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홍보 필요"

▶영화를 보는 내내 착잡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답답하다. 국내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자살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안고 있고, 특히 자녀를 자신의 죽음에 동반하는 끔찍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사회적으로도 지원 방법을 마련하고 홍보하기도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 삶의 낭떠러지에 직면할 수 있는데 심리적인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누구나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심리 지원까지 함께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국가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키워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이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좀더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건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조서연·최로운 등 아역 배우들 덕이다. 그들의 캐스팅 과정을 듣고 싶다.

"선유 역을 캐스팅할 때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어두운 상황을 연기하며 혹시 그 배우가 심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서연 배우는 매우 밝은 성격을 지녔고 연기를 현실과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서연 배우는 1차 오디션 영상으로 처음 접했을 때 수많은 후보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감정표현이 너무나 뛰어난 배우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다운 밝은 모습과 천진한 모습도 가지고 있어서 망설임없이 캐스팅했다. 정국 역의 최로운 배우는 실제로 만나봤을 때 생각보다 너무 의젓하고 차분한 느낌을 받아 과연 개구장이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오디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심각한 표정으로 오디션 영상을 돌려보는데, 나도 모르게 최로운 배우의 연기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특히 그는 정국이처럼 밝고 재미있는 면들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속 아재개그 등은 대부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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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국내 영화 현장에서 스크립터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단편영화 '바다를 건너 온 엄마'(2011)를 통해 감독으로 신고식을 치렀고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다면.

"대학교에서 학보사 신문기자나 록밴드활동 영화동아리 등을 하면서 문화예술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영화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에서 과제로 '당신이 뱉은 껌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생각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교수님께서 '훌륭한 여성감독'이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해주셨는데 왜 '여성'이라는 단어가 꼭 붙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막연하게 영화감독의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일본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났고 졸업과 함께 영화 '역도산'에 통역으로 들어갔다가 스크립터까지 맡게 되며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다를 건너온 엄마' 역시 유사 모녀 관계를 통해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다뤘다. 그런 소재에 관심을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특별히 사회성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대학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에 영화들을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고, 나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니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소재에 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다를 건너 온 엄마'는 내가 19세가 되던 해에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야 했던 내 엄마에 대한 아픈 상처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밤샘 알바를 하던 중 알게 된 중국동포 아주머니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을 바탕으로 만든, 어쩌면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었던 영화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라는 미안함과 상처에서 시작되었으니 둘 다 나의 상처에서 시작되었다라는 공통점이 있는것 같다."

"최근 상업영화에서 여성 감독 활약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 풍부"

▶한국 독립영화 시장은 한동안 침체를 거듭한 끝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황야에 새로운 싹을 하나둘 틔웠다. 그 중심에 여성감독의 눈부신 활약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 여성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최근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에서도 믿고 볼 수 있는 여성감독님들이 많이 계셔서 정말 든든하고 감사하다. 내가 아무런 불편없이 현장에서 연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분들이 미리 여성감독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앞으로 데뷔할 여성감독님들을 위해 그 신뢰감을 이어가야 한다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여성으로서의 삶, 그리고 여성의 시선들이 최근 우리 영화시장에 풍부한 다양성을 가져올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남성감독님들도 더욱 좋은 작품들을 만드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며 그 시너지로 우리나라의 영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했던 순간을 말한다면.

"아직 개봉전이지만 최근 언론이나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올려 주신 리뷰들을 찾아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면서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주시다니 하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데 오히려 내가 힘을 받고 있다니 왜 나는 늘 받기만 하는 인간인가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일상속에서 최근 가장 행복했던 건 운동 겸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순간이었다. 최근 장마로 수량이 늘어난 천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왜가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는 모든 걱정들을 잊을 수 있었다. 하루 빨리 마스크를 벗고 마음 편히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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