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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미 〈연출가〉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듣던 말이 있다. "죽을 각오로 임해라." "밥만 먹여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라."
예술에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친 예술가들은 어쩌면 아름답다. 안타깝게도 높은 빈도로, 그들을 본받지 않으면 열정 없는 한량처럼 취급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왜 유독 예술 쪽이 그것을 미덕처럼 여기는지 의문이었다. 시장이 작으니 절실해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전제와 예술을 하면 힘든 시절이 한 번은 찾아오니 잘 버티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조언이 이상한 후광만 가진 채 남아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나도 한때 '그만큼 좋진 않은데 이걸 해도 되나'하는 불안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연극보다 좋은 게 너무 많았고, 작업이 내 일상을 방해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청 고생한 날에야 일했단 기분이 들었고, 매 순간 설레지 않으면 마치 죄지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조언은 상대가 잘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의미 잃은 파편들만 진리인 척 떠도니 '죽을 각오로 임해라'가 당근도 채찍도 아닌, 이상한 가시덩굴처럼 발목을 묶었다. 나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연극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주위에 많다. 그게 실패의 의미가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을 선택했단 사실일 뿐인데, 연극 앞에서 묘한 좌절감이나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꿈이란 건 꾸다가 도전해보고, 몸으로 파악해보고, 그다음에야 몸을 던질지 말지 판단할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분야가, 이 단계에서 다른 선택을 하면 실패로 규정짓는다.
요즘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이게 제 유작입니다." 힘들었던 작품을 두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농담이다. 유작만 10편째 하고 있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매 순간 진심이었다. 난 연극이 누군가 규정한 그만큼 좋지는 않다. 내 삶을 바칠 생각이 전혀 없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도전을 할 것이다. 누군가 보기엔 연극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과연 어느 타인이 할 수 있을까. 나는 모두가, 자신이 떠나온 자리를 멀리서도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의미 잃은 파편들이 함부로 입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될 일이다.
이하미 〈연출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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