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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진〈미술평론가〉 |
팬데믹 상황에서도 또다시 가을은 오고, 하늘은 오히려 더욱 드높고 쾌청하다. 그리고 초목들은 온 산야를 점점 형형색색으로 물들여간다. 역시 대자연이야말로 늘 최고의 색채학자다. 어디를 가도 풍경이 사람들을 물들이고, 또한 사람들이 풍경을 물들인다. 인간의 과욕이 부른 환경파괴와 미증유의 바이러스 창궐 속에서도 마음 붙일 곳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곳은 역시 자연이다. 해맑은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노란색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들, 그 아래 서서 '본다'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새삼 돌아본다.
우리는 모두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또 자연을 본다. 보이는 만큼 보면서 또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보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그가 보는 세계를 그림이나 시로, 또는 음악이나 춤 등으로 형상화하면서 일시적인 지상의 삶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특히 미술작품은 작가마다 자신이 바라본 세계를 조형적으로 투영하여 보는 이들에게 투사해 들어가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가장 시지각적인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조형세계의 존재구조는 감각적이고 실재적인 형상으로서의 전경(前景)에 이념적이고 비실재적인 것으로서의 후경(後景)을 거느리고 있다. 그 후경은 개인적인 이념 및 보편적인 정신적 연관의 계층과 심리적 계층 및 생명의 계층 등의 다층적인 구조와 깊이를 지니며, '객관화된 정신'으로서 전경에 투영된다. 그러므로 시각예술은 '보는 것'을, 즉 사물의 외양뿐 아니라 그 본질을 보는 일을 가르친다.
'시각적 사고'라는 말이 가능할 정도로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불가분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각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선택적이며 구성적인 과정으로서 사고작용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시 화가는 그가 보는 것을 그린다고 하기보다는 그가 그리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즈음 밤새 자료조사며 책을 읽느라 눈을 혹사하였더니 전에 없던 이물감과 통증이 느껴진다. 당분간은 실내외에서 반드시 선글라스를 껴야 하는 등의 주의 요망 안과 처방을 받고 보니, 세상을 향해 열린 창으로서 두 눈이 얼마나 보배이며 축복인가를 더욱 실감한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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