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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칼럼] 美 대선에 비친 우리의 그늘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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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위험한 결합= 외신을 타고 들어온 몇 장의 사진. 낯설지 않다. 트럼프를 위해 기도한다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미국인들. 무릎 꿇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익다. '하나님이 세우신 트럼프,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바이든으로 승리가 이미 기운 뒤다. 한동안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진풍경. 한 여론조사가 이를 설명한다.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 유권자 10명 중 8명이 트럼프를 찍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유권자 72%가 바이든을 찍은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 운동이 한국에서도 뜨거웠던 사실을 아시는지. 수십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들이 미 현지의 음모론을 퍼 날랐다. 부정투표 증거라는 해괴한 뉴스가 한국 극우 개신교 신자 SNS 사이에 급속히 공유됐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 위험한 만남이다. 독선을 낳는다. 독선은 분열과 공포, 광기의 정치를 부른다. 고결한 신앙 같은 개인적 미덕이 정치적 미덕으로 이입되는 순간 그것이 공포와 테러의 빌미가 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수도원 자코뱅 클럽의 일원에서 단두대(斷頭臺)의 화신으로 변신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가 그랬다. 그는 '예수를 모방해 기독교적 절대주의를 바탕으로 절대적 선을 실현하려고 한 사람'(한나 아렌트·유대계 독일인 철학자)이었다. 세계를 분열과 대립, 극단적 이기주의로 몰아간 트럼피즘 역시 비슷하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문화다원주의, 인본주의를 배격하고, 포스트모더니즘·뉴에이지도 경원시한다. 크리스텐덤(Christendom·기독교 국가)의 욕망은 구시대 유물. 중세교회의 실패한 실험이었다. '가이사의 것'과 '신의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 종교의 바른 가르침이다. 한국교회가 미 공화당의 그림자 권력,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의 권세를 부러워하는가. 절대선을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의도는 정치를 파괴할 뿐이다.

#160년 된 낯선 전통= '미국이여, 바이든을 뽑아라'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미국의 양대 권위지 NYT와 WP의 사설 제목이다. 미 최대 일간지 USA투데이가 '트럼프를 거부하라, 바이든에게 투표하라'고 선언한 것은 더 충격적이다. 창간 38년 만에 특정 후보를 처음 지지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USA투데이 너마저…'라는 뒷말을 남겼다. 뉴욕포스트는 반대편에 섰다.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매체다. 트럼프의 앙숙 CNN은 줄곧 반트럼프 논조를 유지했다. '트럼프 효과'를 톡톡히 봤던 폭스뉴스. 보수 시청자를 끌어모아 창사 20여 년 만에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 폭스가 트럼프를 손절매했다. 공화당 텃밭 애리조나에서 바이든 승리를 가장 먼저 보도하면서 트럼프를 격노시켰다. 반면 뉴스맥스, 원아메리카뉴스는 트럼프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켰다. ABC·CBS·NBC 등 전통의 3대 방송은 트럼프에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주요 방송사가 트럼프의 회견을 중계하다, 근거 없는 '선거 부정' 주장에 중계를 끊은 것은 초유의 사건이다. 생중계 끊기, 우리는 왜 안되는가. 미 언론의 대선후보 공개 지지는 160년 역사를 지녔지만,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한국 언론이 후보 지지를 선언한 적은 아직 없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정파성을 교묘히 감추고 있음을 독자는 이미 다 안다.

사실과 의견은 다르다. 보도에서 공정성을 유지한다면 평론인 사설이 지지후보를 표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문제는 정파성 강한 한국 언론이 보도의 공정성을 끝까지 유지하겠느냐는 데 있다. 조심스럽지만, 그 담론을 시작할 때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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