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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진〈미술평론가〉 |
일상의 물리적 시간은 순간의 연속으로서 수평적으로 흘러간다. 이 흐름은 인간을 비롯해 세상만물이 거역하거나 돌려놓을 수 없다. 물론 현대과학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 같은 것을 암시하고, 또는 시·공간의 곡선적인 휘어짐을 언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문명의 이기로 인간수명이 길어져 한 백년을 산다 해도 영원으로 흘러가는 수억 겁의 시간에서 본다면 참으로 티끌 같은 순간을 살고 갈 뿐이다. 그런데 이 시간들마저 인간은 권력과 돈과 명예 다툼 등으로 하릴없이 소진해버리고 만다. 모든 형태의 욕망이 곧 생존의 에너지라고 보더라도, 각자 들고 있는 그릇의 크기는 고려하지도 않고 너무도 차고 넘치게 치달아가기만 한다.
기원전 6·7세기 그리스 시인 테오그니스와 헤시오도스는 물리적으로 흐르는 시간인 크로노스(kronos)에 대응해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성을 언급한다. 이것은 미적체험의 직관적이고 관조적인 시간으로서, 수직적으로 지펴오르는 정신적인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의 연속 속의 순간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정신과의 대화의 시간에 속하는 것으로서, 초월적인 것과의 수직적 접촉점이다. 우리는 미적체험의 순간에 일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단절되며 미의식이 집주(集注)되는 특수한 질적인 시간 속에 있게 된다. 즉 미적 대상에 대한 관조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의 감각은 정화되고 영혼은 순화돼 일종의 내적 희열을 체험하게 되며, 우리의 정신은 무한히 높은 곳으로 고양되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체험은 서양에서뿐 아니라 동양의 선인들도 망아(忘我)와 좌망(坐忘) 등의 말로 예술창작론과 감상론에서 거론한 바 있다.
여기서 '미적'이라는 말은 좁은 의미의 아름답고 우아한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비장미와 숭고미, 골계미(해학적인 유머), 그리고 추미(醜美) 등까지도 함축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의미깊은 시들을 읽거나 짙은 슬픔이 배어 있는 심포니 혹은 신랄한 블랙 유머의 미술품들과 추한 폐기물들을 이용한 작품들 앞에서도 미적체험을 한다. 지고한 이 시간들이야말로 인류가 누리는 특권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창작과 감상을 통해 카이로스의 시간을 많이 체험하는 만큼 더 많은 정신적 시간을 우리는 이 생에서 누리고 산다. 세속의 욕망으로 넘치는 그릇을 잠시 비우기도 하면서.
장미진〈미술평론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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