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지지 속 출범한 정부
진보전성시대 문 열었지만
'약발 다했나' 하강곡선 전환
민심이반 이미 심각한 수준
커지는 불길함은 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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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중부지역본부장 |
프랑스에선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붉은 태양이 어둠의 블랙홀로 빨려들기 직전,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한 몽환적 풍경을 기발하게 묘사한 것이다. 저 멀리서 어슴푸레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아니면 굶주린 늑대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우리 주변에서도 늘 어슬렁거린다. 인간의 위장술이 나날이 발전하다 보니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알다시피 정치에서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주로 선거 때 마주하게 된다. 사실, 출마자의 실체를 아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저마다 시민의 충견임을 자처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기 마련 아니던가. 이를 좀 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시민을 받드는 진짜 개가 선거판에 있기나 한 건지가 의문이다. 만약 개 따윈 없고 늑대 무리만 있다면, 선거란 결국 조금 더 개 같은 늑대를 고르는 인기투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듯 대부분 기대 이하이거나 심지어 최악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런 사례는 셀 수조차 없지만, 과거에 국민투표로 집권한 히틀러란 괴물의 존재가 선거제도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한때 독일인의 히틀러 지지율이 99%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명제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개와 늑대의 정치학'을 쓴 정치학자 함규진은 선거의 본질이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주인이라는 믿음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 그보다는 평범한 노예(대중)들이 뛰어난 주인을 고르는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이 같은 선거제도의 근원적 문제 탓에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우중(愚衆)정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나라는 어떤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할 때 국민적 성원은 대단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무려 90%에 육박할 정도였다. 문 정권이 역대급 반려견처럼 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보수 야당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지만 양치기소년 취급을 당했다. 국민을 배신해 버림받은 그들의 자업자득이었다. 문 정권은 무능하고 분열된 보수 세력을 걷어차고 거침없이 독주했다. 지방선거에 이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진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후 문 대통령 지지율은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었다. 급기야 이제는 콘크리트라던 40%마저 깨졌다. 상당수 젊은 층과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는 의미다. 앞으로 문 정권이 기댈 곳은 그들이 다이아몬드 지지층이라고 부르는 '광팬' 밖에 남지 않았다.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집권 말기에 터져 나온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됐던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이다. 아직 명백하게 드러난 비리는 없지만 갈수록 불길한 조짐이 느껴진다. 정권 입장에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같은 사건은 극히 위험한 뇌관일 수 있겠다. 갖은 무리수를 둬가며 윤석열 총장을 찍어내려는 진짜 이유가 이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으려는 게 아닌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만에 하나 권력 비리가 없더라도 정권의 말로가 순탄치 않을 듯하다. 말만 번지르르한 혹세무민 정치의 약발이 다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두 바보라면 모를까 더 이상 속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정의와 공정을 떠벌리며 사욕을 탐하는 거짓과 위선의 정치에 환멸을 느낄 때도 됐다. 물론 개보다 늑대에 가까운 정치가 이 정권에 국한된 건 아니다. 그렇기에 국민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권력에 굶주린 늑대가 미쳐 날뛰지 못하도록.
허석윤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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