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급 포함 3천명 인재풀에도
지역 로봇기업은 오히려 인력난
학생·기업 연봉 눈높이도 괴리
서울과 산업구조·역할 다른데
지역대 동일한 교육 커리큘럼
지난달 29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덕래관에서 로봇공학과 학생들이 앨리스 M1(ALICE M1) 로봇을 원격 조종해 너트를 옮기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불볕더위가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덕래관의 한 강의실. 방학도 마다하고 10여명의 학생이 사람을 똑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조작에 한창이다. 이들은 계명대 로봇공학과 2학년 이상 학부생 및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로딕랩(RODICLAP)' 소속 학생들로, 지난달 초 인천에서 열린 '2026 휴머노이드 챌린지' 전국 5위의 주역들이다.
이날 주어진 과제는 원격으로 로봇을 조작해 다양한 형태의 너트를 집어 옮기는 것. 정해진 시간 내 로봇에 명령을 인식시키고, 원격 조작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학생이 팔과 손가락을 움직이자, 이내 로봇도 같은 동작을 구현했다. 또 다른 학생이 조작 중인 노트북에는 조작 중인 로봇의 시야가 전송됐다.
로봇은 어깨·팔은 물론, 다섯 손가락까지 사람처럼 움직였다. 일반적인 협동로봇이 집게 형태의 그리퍼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 로봇은 사람과 같은 다섯 손가락 형태여서 훨씬 정밀한 작업이 가능했다. 사람보다 움직임은 다소 느렸지만, 로봇은 정확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현정(29·여)씨는 "이번 미션은 원격 조작을 통해 로봇의 작업 속도와 정확성을 겨루는 것으로, 지령을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게 핵심"이라며 "지난 대회에서는 일부 구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개선해서 다음 대회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AI로봇 수도'로 불리는 대구 대학가의 평범한 일상이다.
◆전국 1위 로봇 인재 양성 요람
대구의 로봇 인재 양성 기반은 자타공인 전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작년 말 기준 지역 대학교의 로봇학과 학부생은 전국(7천501명)의 9% 수준인 653명이다. 서울(2천619명)과 경기(1천75명)에 이은 전국 3위 수준이다. 대학원생으로 한정할 경우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대구 소재 대학교의 대학원생은 262명으로, 서울(212명)보다도 많은 전국 1위 규모다. 전국 로봇 관련 대학원생(1천65명)의 약 25%가 대구에 몰려 있는 셈이다.
지역 대학의 로봇 관련 학과로 범위를 넓혀보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구는 로봇 관련 교원 192명, 학부생 2천500명, 대학원생 385명 등 총 3천명가량의 로봇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단순 규모로는 비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대구시 이윤정 기계로봇과장은 "대구는 전국 최고 수준의 로봇 분야 석·박사급 전문 인력을 보유한 도시"라며 "청년 인재들이 지역에 정착해 글로벌 로봇산업을 이끌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인재는 많은데 기업은 인력난
로봇 인재는 풍부하지만, 지역 로봇기업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린다. 올 상반기 만난 지역 로봇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부분 지역 인재 수급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역 기업과 구직자의 '눈높이'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역로봇기업 CEO는 "서울권 대학생들의 역량에 미치지 못함에도 지역 대학 졸업생들이 같은 수준의 연봉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기업 수준에선 이들의 요구를 맞춰주기 어렵다"며 "채용하더라도 몇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자동차부품 등 제조업 기반 산업 구조도 젊은 세대 취업을 막는 현실 장벽이다. 남성 중심 조직사회에서 나타나는 군대식 문화와 우수 인재를 떠나게 만드는 일괄 연봉제 등도 문제로 꼽혔다. 지오로봇 강태훈 대표는 "기업문화도 변해야 한다. 능력보다 연차를 우선하는 호봉 중심 보상체계는 젊은 인재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며 "대학에도 책임이 있다. 서울과 지방의 산업구조·역할이 다르지만, 동일한 커리큘럼의 교육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지역에선 로봇을 실제 운용하는 오퍼레이터 인력이 절실하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과정은 지역 대학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덕래관에서 유승열 로봇공학과 교수가 대구권 로봇 인재 양성 체계의 강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형 로봇교육 과정 만들어야
지역 대학가에서도 현장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재를 길러내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계명대 유승열 교수(로봇공학과)는 "학령인구 감소로 우수 인재 자체가 줄어든 데다 수도권 집중 현상까지 겹치면서 지역 대학의 인재풀도 과거와는 달라졌다"며 "교육부 정책 변화로 졸업학점과 전공 교육도 축소되는 추세여서 학부 과정만으로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지역 로봇산업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점도 인재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유 교수는 "결국 학생이 안심하고 취업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며 "전국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지역 A로봇기업의 취업 경쟁률은 100대 1 수준이라고 들었다. 학생들이 가고 싶은 기업이 지역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현재 로봇 산업은 본격적인 성장단계에 접어들면서 연구개발을 담당할 석·박사급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다만 산업이 성숙할수록 개발 인력보다 로봇을 산업현장에서 운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현재 석·박사급만 찾는 로봇 구직 시장의 문이 학부 졸업생들에게도 활짝 열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유 교수는 "지금은 로봇을 개발하는 인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지만 앞으로 5~10년이 지나 로봇이 산업 전반에 보급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드론처럼 누구나 로봇을 활용하는 시대가 오면 개발자보다 로봇을 운용하고 응용하는 인력이 훨씬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때는 학부 졸업생들도 구직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기업과 교육 현장의 눈높이 간극을 좁힐 대안으로 '대구형 로봇교육과정' 운영을 제안했다. 지역 산업구조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유 교수는 "현재 전국 대학의 로봇공학 교육과정은 대부분 비슷한 형태"라며 "대구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도시인 만큼 지역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반영한 교육과정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대학과 기업 간 협력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교수는 "대학과 기업이 공동 프로젝트와 채용연계형 인턴십을 더 확대해야 한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보다 쉽게 채용할 수 있고, 학생들도 지역 산업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아야 지역 로봇산업과 대학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대구시청 경제부서와 산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도 끝까지 듣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