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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2021 영남일보 문학상] 단편소설 당선작 - 최원섭 '수달' (하)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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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 作

수달의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걸 보고 그는 수달을 침대 위로 인도했다. 수달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도 별일이 없어 수달 옆에 누웠다. 벌써 잠이 들었는지 수달의 몸이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는 팔을 뻗어 수달의 주먹 만한 뒤통수를 만졌다. 숨을 쉬는 대상에 손을 대본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역시 묘미는 기다란 몸이었다. 그의 손이 수달의 몸통을 길게 쓸어내렸다. 엉덩이 가까이에서는 꼬리가 살짝 반응했다. 무심결의 움직임을 보자 그는 장난스러워졌다.

그는 수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당겨 천장을 향하게 만들었다. 포유류로서 생겨나는 호기심을 절제할 수 없었다. 그는 자세히 수달의 몸통을 관찰했다. 수놈이라면 있어야 할 부위가 안 보여서 다리 하나를 당겨볼 심산이었다. 순간 수달의 시선이 느껴져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재빨리 침대보를 정리하는 척 연기를 했지만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수달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수컷의 생식기는 배꼽에서 교미 때만 돌출돼 나온단다. 난 바다사자한테 물려서 배꼽이 흉하게 볼록해졌어.

그렇구나. 그는 민망해져서 도로 누웠다.

천장에 영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옆에 누가 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수달은 무엇을 포기하고 있을까. 캘리포니아라면 먼 길이었을 텐데. 수달은 그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 대답을 했다. 그 말들이 천장에 둥실 떴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지.

어떻게 견뎠어?

지금처럼.

지금처럼?

가만히 누워있었어.

배영이군.

그는 욕조에 누워 그런 상상을 종종 하곤 했다. 만약 달라졌을까. 아들이 배영을 배웠다면. 그래서 더 오래 물에 뜰 수 있었다면. 생존 호흡법을 익혔다면. 발차기를 더 길게 할 수 있었다면. 어딘가로 헤엄쳐가지는 않았을까. 최소한 어디선가 발견되지는 않았을까. 아들 친구처럼 비치볼이라도 껴안고 있었다면. 그 비치볼을 빼앗았다면. 그날 친구의 식구들을 따라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그 전날 감기라도 걸려 앓아누웠다면. 애초에 그 친구를 안 사귀었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그는 수많은 만약을 떠올렸다. 하지만 '만약'은 있을 수 없는 가설이었다. 왜냐면 그의 관점에서 실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안에 가정법을 대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냉정하게도 실종이 결과임을 인정해서 그를 놀라게 했다. 아들 실종 후 불과 십년도 안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실종을 결과로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지어 다가올 십년 아니 백년을 또 하나의 과정으로 맞이할 각오가 돼 있었다.

그는 수달을 힐끗 봤다. 바다에 누워 파도에 몸을 맡긴 수달이 눈앞에 그려졌다. 수달은 어떤 영상을 보고 있었을까. 수달이 몸을 일으켰다. 잠이 안 와. 그 역시 일어나 앉았다. 수달이 침대를 내려갔다.

자맥질을 해야겠어. 몸이 너무 건조해.

수달의 말에 그는 욕실로 가서 물을 틀었다. 욕조가 점점 물로 채워졌다. 수달은 그 새를 못 참고 욕조로 들어가 발을 담갔다. 그가 애써 말린 털들이 점차 물에 젖었다. 수달이 들락날락 법석을 떠는 통에 그가 물세례를 맞아야 했다.

물이 충분히 차자 수달은 뛰어난 잠수 실력을 선보였다. 물 안과 밖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어 그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물 안에서 꼼짝 않기도 했는데, 그가 걱정스러워할 무렵 머리를 쏙 내미는 장난을 즐겼다.

물이 넘쳐 욕실바닥이 물 천지가 됐을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더 이상 종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방문객을 무시했다. 세 번 네 번 초인종이 계속되자 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수달의 귀도 빳빳해졌다. 물이라서 소리가 큰 파장으로 몰려 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전도사라고 주장할 작정으로 현관문을 자신 있게 열었다. 경비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비슷한 표정의 경찰이 성큼 다가왔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수달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조개를 무더기로 운반하셨잖아요. 이사 온 후로 칩거의 나날을 이어가던 분이.

집안을 좀 봐도 될까요.

경찰이 현관문을 미는 통에 그의 발이 조개무덤을 건드렸다. 조개껍질들이 쏟아져 내렸다. 경찰에게는 본연의 업무겠지만 경비까지 집안 수색에 참여했다. 그만큼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열다섯 평에 두 명의 인력을 투입해 얻은 성과는 제로였다.

목욕을 하던 중이신가요. 찢어진 방충망 수리는 왜 안 하세요. 이만큼의 조개를 혼자서 다 드셨나요. 공허한 질문들만 던져놓고 수색 인력은 철수했다. 그는 욕조에 남은 물과 무너진 조개무덤을 바라봤다. 그에게 남은 것도 제로였다.

그는 산책을 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경비의 눈초리로 인해 뒤통수가 따끔했다. 그는 화단을 넘어 상추밭으로 갔다. 오층을 올려다봤다. 그 지점에서 아래를 봐도 땅바닥에는 상추뿐이었다.

아저씨. 먹을 걸 왜 밟아. 빨리 나와요.

경비가 소리쳤다. 그는 화단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없을 줄 알고 있었지. 꿈같은 일이 반복되는 법은 없어. 그는 집에 들어갈 기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파트단지 주변의 맨홀 뚜껑들을 눈여겨봤다. 수달이 한 가닥 털을 묻히지나 않았는지 유심히 살폈지만 흔적이 없었다. 간절히 비가 오기를 바랐지만 하늘은 흐린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파장이 전달되기에는 대기의 습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마트에서 수산물코너 직원이 아는 체를 하려고 했다. 그는 냉정하게 상품 진열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덕테이프를 골랐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눕는 대신 그는 거실 한가운데 앉았다. 탁자에 놓인 서류봉투를 열었다. 서류를 꺼내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본정보를 기입하다가 펜을 멈췄다. 이혼 사유가 아리송했다. 아들의 실종 때문일까. 아니다. 아들에게 누명을 씌우는 꼴이지. 성격 차이일까. 너무 상투적이지. 결혼은 아무래도 존재론적인 개념이었다. 애당초 결혼이라는 제도에 섣불리 발을 들인 게 잘못일지도 몰라. 어쩌면 숨을 영원히 멈추려고 했던 게 원인일까. 그 시도들을 지켜보던 아내는 지겨웠겠지. 그때 문득 수달이 떠올랐다. 책임 전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뤄오던 이혼서류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 그는 서류를 마저 작성하고 탁자 위에 잘 보이게 펼쳐 놨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내가 애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옷을 벗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과감히 겉옷을 벗어제끼고 팬티만 남겼다. 미련 없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덕테이프를 붙여 문틈 사이를 막기 시작했다. 바다 느낌을 살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가 고른 테이프는 푸른색이었다. 이왕이면 몬터레이 베이가 어떨까. 나무가 부서진 모서리 부분은 테이프를 덧붙였다. 하수구 구멍을 막기에는 스펀지 미니 공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욕조의 물을 틀었다. 그는 욕조로 들어가 앉았다. 팬티가 우선 젖어들었다. 고무줄이 약해 벗겨질 듯했다.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욕조가 넘쳐났다.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작은 폭포를 이루었다. 그는 물의 동태를 주의 깊게 살폈다. 바닥에 얇게 펼쳐져 있던 물이 점점 상승했다. 그는 기다림에 익숙하다고 자신했는데 착각이었다. 어서 물이 차기를 바라느라 다시 종교를 떠올릴 지경이었다.

이윽고 물이 욕조 높이까지 차올랐다. 기쁨도 잠시 문틈에 붙인 테이프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일어나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최대로 열었다. 수위가 좀 더 빠르게 올라가더니 마침내 욕조를 훌쩍 넘어섰다. 작은 수영장에 온 기분이었다. 그는 새우등 뜨기도 해보고 개헤엄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이 가슴을 넘어 어깨까지 차오르자 그는 부산한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뒤로 젖히고 드러누웠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배영을 흉내 냈다. 보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마음 놓고 시도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뭐든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갈수록 초조해졌고 실망감만 더해갔다. 몸에 힘이 빠져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케 세라 세라. 한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났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이윽고 누운 몸의 균형이 잡히자 천장이 똑바로 보였다. 긴장했던 근육이 풀려 나른하기까지 했다. 온몸에 전해지는 흐뭇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혼자였다. 오로지 천장만이 코앞에 있었다. 천장은 살면서 가장 친하게 지낸 상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물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물을 먹고 허우적댔다.

몸에 힘을 빼라고.

수달이었다. 수달이 그의 등을 받치고 있다가 손을 뗐다. 그럼에도 그는 가라앉지 않았다. 수달이 물 밖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거야? 그가 물었다.

저 정도 구멍을 통과하는 건 일도 아니지.

열어놓은 건 아니겠지?

미니 공으로 다시 막았어. 걱정 마.

그는 수달과 나란히 누웠다. 산소가 부족해져 갈수록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수달이 그를 슬쩍 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빠질까봐 돌아보지 않고 누운 자세를 고수했다.

어쩔 셈이야?

그의 물음에 수달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코가 천장에 닿았다.

어쩔 셈이야?

수달이 똑같이 물었지만 그도 묵묵부답이었다. 수달이 그의 팔짱을 끼더니 손을 맞잡았다. 그는 마치 수달이 된 기분이었다. 같은 포유류 정도까지가 좋았는데. 둘은 서로 천장을 봤다. 그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왜 다시 온 거야?

배영을 가르쳐주려고.

그럴 시국이 아닌 거 같은데.

간절할수록 배영이 필요하단다.

그는 수달이 상황파악을 잘못했다고 느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수달의 신상에 이로워 보였다.

바다로 가는 길은 아직 못 찾았어?

내비게이션이 절실해.

요즘 동물원은 살 만하지 않나?

정이 없어. 복작거리기만 하고.

그래도... 사는 데서 정을 붙이려고 해봐.

누가 할 소리를.

둘이 대화를 나눌수록 공기가 희박해져 갔다. 결국 말소리 대신 가쁜 숨소리만 이어지던 중이었다. 귀가 밝은 수달이 그에게 먼저 물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들려.

그가 귀를 기울였다. 삑. 삑. 삑. 삑. 낯설지 않은 소리였다. 물에서는 정말 잘 들리는구나. 그는 감탄하며 계속 소리에 집중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이어 현관문이 열렸다. 익숙한 발걸음의 강도와 간격으로 봤을 때 아내가 확실했다. 한집에 살 때 쓰던 비밀번호라는 걸 어떻게 알아챘을까. 아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잠시 두리번거리는 듯했다. 그리고는 탁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그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내는 욕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었다. 아마 물이 새나갔던 모양이다. 아내가 문고리를 돌리다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고막이 울려서 얼굴을 찡그렸다. 아내는 소리를 지르다가 탁자 위의 칼을 집어 들었다. 욕실 문틈을 쑤셔댔다. 테이프 하나가 떨어져서 물 위로 떠올랐다. 문틈으로 물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아내는 부서진 모서리로 칼날을 집어넣고는 길게 갈랐다.

그의 코가 욕실 천장에 찌부러졌다. 얼굴은 작지만 주둥이가 긴 수달의 코도 천장에 부딪혔다. 수달은 끝까지 호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침착하라고 조언했다. 삶도 죽음도 다 시간문제구나. 그런 생각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 수달의 손아귀가 꿈틀했다. 그때 거실에서 남다른 목청이 들려왔다. 뭐야 이거. 웬 물바다야.

경비가 욕실 문을 어깨로 쳐대는 것 같았다. 나이에 비해 힘이 센 사람이었다. 테이프가 찌익 하며 뜯겨져 나갔다. 문의 틈새가 넓어졌다. 틈이 벌어질 때마다 물이 거실로 새어 나갔다. 그는 걱정이 됐다. 천장과 코가 맞닿은 후로 더 이상 수위가 높아지지 않았다. 잠시 후 욕실 문이 활짝 열렸고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졌다. 그 사이로 두 포유류가 봇물처럼 쓸려나왔다.

그는 난리통에 수달의 손을 놓쳤다. 미끄러운 거실바닥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눈을 떴다. 수달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경비가 베란다의 구멍 난 방충망 사이로 목을 넣었다 빼더니 부리나케 집을 빠져나갔다. 아내는 물난리를 피해 탁자 위로 대피 중이었다. 아내가 손에 쥔 서류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내는 그의 몰골을 보다가 탁자에서 내려왔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마른 옷가지를 그에게 건넸다. 아내는 일단 물에 잠긴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아내를 따라 아파트 화단 앞 벤치에 앉았다. 그가 위를 올려다보니 오층에서 아직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서류를 만지작거렸다. 경비가 나타나더니 아파트 주차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수달을 경찰에 인계했다며 의기양양했다. 또한 이웃집을 물바다로 만든 피해 보상을 그가 해야 할 거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경비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아내는 서류를 찢어버렸다.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고 선언했다. 결의에 찼어도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가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며 또한 욕실에 있는 욕조를 제거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아내에게 수달이 달아나는 걸 목격했냐고 물었다. 그를 보는 아내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내가 방금 전의 선언을 취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예감을 증명하듯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거울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 꼴을 좀 봐. 그는 거울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영 주인 의식이 들지 않았다. 수염만 길면 동물계 척삭동물문 포유강 식육목 족제비과에 속하는 수달에 가까웠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를 불렀지만 무시한 채 다리에 점점 속도를 냈다.

동물원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수달 우리 앞은 아이들로 인해 소란했다. 그는 이곳이 아이보다 동물의 소리를 들어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눈앞에는 몇 마리의 수달이 있었다. 그놈이 그놈이라 할 정도로 개성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놈 중에 그놈을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아이들 고함 저변에 깔린 소리에 집중했다. 간절할수록 통하리라.

수달들이 무리를 지어 자맥질을 했다. 동시에 물에서 나오더니 어디론가 뿔뿔이 달음박질했다. 그중 한 수달이 새우등 뜨기를 하듯 엎드려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 수달을 주시했다. 기다림을 아는 놈이라면. 아이들이 다 떠나갔다. 물속에 있던 수달이 꿈틀거리며 꾸준히 시선을 끌었다. 드디어 물에서 뛰쳐나오며 몸통을 길게 뻗었다. 배꼽이 흉하지 않았다. 그는 다행이라 여겼다. 그가 찾는 수달은 바다로 갔을 테니까.

그는 주변을 배회하다가 사육사가 먹이를 주는 틈을 타서 우리 안으로 잠입했다. 그리고 초기의 적응 기간도 필요 없을 만큼 현지 환경에 금방 젖어들었다. 다른 수달들에게 새내기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 처신하기가 수월했다. 그는 수달이 미리 파놨다는 구멍을 따라 태평양으로 갈 작정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보이기는 해도 본능에 따라 자맥질을 했다. 이렇게 큰 욕조는 생전 처음이었다. 몸통을 뒤집어 한껏 여유를 부려봤다. 몸에 힘을 빼고. 침착한 호흡과 발차기. 출렁이는 물결에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언뜻 우리에 쳐진 창살 너머로 우산을 쓴 아내가 보였다. 그를 알아보는 건지 시선을 오래도록 마주쳤다. 아내의 말이 그녀의 입모양을 통해 그에게 전달됐다.

좋아 보여.

그는 최선을 다해 배영을 선보였다. 눈에 빗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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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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