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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살로메 〈소설가〉 |
코로나바이러스로 일상의 질서들이 흩트러진 지 오래다. 독서 모임 신년회도 카톡으로 대체해야 했다. 안부를 주고받는데 한 회원이 살짝 넋두리를 한다. 지인과의 이런저런 통화 끝, 집값과 주가가 올라 다들 싱글벙글하는데 자신은 한 게 없다고 자책했단다. 지인 왈, 덕이 부족해서 그러니 책만 읽지 말고 자신처럼 나가서 봉사라도 하라고 했다나. 졸지에 '덕이 부족한' 사람이 돼버린 그녀를 위로하듯 센스쟁이 회원이 화답한다. "와, 린드 부인 납시었다!"
이쯤에서 '빨강머리 앤'의 린드 부인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에이번리에서 오지랖이 넓기로는 일등인 그녀가 앤을 보자마자 한 첫마디는 "네 외모를 보고 널 고르지는 않은 게 확실하구나"였다. 못생기고 주근깨 투성인 데다 홍당무색 머리칼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덤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사려 깊은 작가인 루시드 몽고메리도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린드 부인을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제법 명랑하고 인기 있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완곡히 묘사했다. 사회적 가면 같은 건 무시해버리는 린드 부인 같은 이의 문제점은 자신의 솔직함이 정직함이나 정의로움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일방통행 소통자의 대척점에 이타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타인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게 몸에 배었다. 절로 존경심이 인다. 이타심도 궁극적으로는 이기심에 맞닿아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 안에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바라는 인정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될까. 이타성에 손톱만 한 불순함이 섞여 있다고 해서 타자를 생각하는 그들의 본심이 퇴색되는 건 아니니. 인간인 이상 어찌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것인가. 적어도 그들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악의 없는 세상의 린드 부인들을 보면서 이타심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 본다. 타인을 이롭게 하려고 인위적으로 나설 것까지는 없다. 상대 가슴에 가시 한 점 박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솔직해서 상처 주는 것보다는 불순하나 이타적인 사회가 훨씬 명랑하다. 죄 없지만 얄미운 세상의 린드 부인들에게 초록지붕집의 마릴라가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사회적 가면은 가식이 아니라 예의라고.
김살로메 〈소설가〉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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