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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첨보다는 삭

20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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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살로메〈소설가〉

사진 기초를 배울 때였다. 제출한 회원의 사진을 선생님께서 화면에 띄우셨다. 드넓은 호수 가운데 오리떼가 노닐고 화사한 붓꽃과 물풀이 물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머지 오리 몇 마리는 물풀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했고 위쪽 먼 배경으로는 전원주택이 자리 잡은 풍경 사진이었다. "무엇을 찍고 싶었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예비 사진가는 "평화로이 노니는 오리떼를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저 호수 가운데 떠있는 오리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버리는 게 낫겠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사진 입문자로서 깜짝 놀랐다. 사진이란 장르가 글쓰기와는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두 방식이 너무나 같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처음이자 끝 역시 '버리는 데'에 있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에도 유사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대학원 공부 시절 정민 선생이 숙제로 한시를 번역해서 점검을 받았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스승은 야단을 치고 다음과 같이 고쳤단다.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딱 반으로 줄었다. 다 설명하려 들지 마라. 보여주기만 해라. 두 분야 다 공통으로 강조하는 건 취함이 아니라 버림에 관한 것이다.

어찌 사진과 글만이 이런 원칙과 가까울 것인가. 삶을 대하는 방식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사안에 이리저리 보여주고 싶고, 이것저것 다 말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살다 보면 살을 붙여 변명하고 싶고, 색조 화장으로 과장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그것을 다 받아줄 만큼 세상의 귀나 눈이 한가하거나 무의미하지 않다. 나와 다른, 현명한 상대는 언제나 핵심만을 원한다.

자꾸 들이고 뭔가 덧붙이려는 것은 내 안에 쌓이는 공허의 탑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무너질까 두려운 그 허상을 가리려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너무 아프면 아프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고, 죽도록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 발설하지 못한 그 여백의 여운이야말로 진짜임을 '찐' 스승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의 군풍경을 거두고 문장의 시든 잎을 털어내듯, 놓아줌으로써 공허의 탑이 덜 쌓이도록 일상을 조율한다. 넘칠 바에야 모자란 것이 낫지 않은가. 인생 최고의 퇴고는 누가 뭐래도 첨(添)보다는 삭(削)이어야 함을 깨치는 나날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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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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