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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법관 서굿 마셜이 생각나는 요즘

2021-01-25

법원 판결 국민신뢰도 29%
OECD 회원국 최하위 수준
美 첫 흑인 연방대법관 마셜
정의·인권 관점에서 법 해석
사회 통합 이끄는 재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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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 대구대 교수 전 대구대 총장

꼭 2년 전인 2019년 1월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 일주일 전에는 대법원 청사에서 80대 남성이 목매 자살했고, 그 두 달 전에는 대법원장의 차량이 화염병 공격을 받았다. 사법 불신이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뒤에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작년 말 정경심 교수 판결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판결의 전 과정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 응답자의 66%가 그렇게 답했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지난해 말 보도된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국제조사에서도 사법 시스템과 판결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확인됐다.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지난 4일 시무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말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을 실천으로 보여줄 때다. 단기 대책이나 땜질 처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합적인 진단과 총체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먼저 정치권과 재벌 등 어떤 힘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판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사적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판결은 정의와 사회통합의 최후 보루이기는커녕 더 큰 갈등의 씨앗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이다. 중요한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는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다.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법률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1954년, 미 연방대법원의 브라운사건 판결이 모범이었다.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분리 정책을 위헌이라 결론내린 역사적 판결이었다. 당시 미 연방 대법원은 사회과학계의 연구성과들을 폭넓게 참고했다.

둘째는 법과 판결이 자칫 과거의 질서를 보강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시대인 요즘은 더욱 그렇다. 법 해석과 판결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사건의 의미와 법을 과거의 패러다임 안에서만 해석하는 판결은 기존의 부당한 질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마침 생각나는 법률가가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미국의 첫 연방 대법관이 된 서굿 마셜이다. 미국이 한참 격동기였던 1967년에 연방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1991년까지 일했다. 앞의 브라운사건에서 흑인 학생측의 변호인으로 참여해 역사적 판결을 이끌어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마침 어제 24일은 그가 세상을 뜬 지 18년 된 날이었다.

그는 그냥 법률 전문가가 아니었다. 전형적인 소수자였다. 증조부는 콩고에서 노예로 팔려 왔고, 할아버지도 노예였다. 힘겹게 링컨대학을 졸업했지만, 메릴랜드대학 로스쿨은 그의 입학을 거절했다. 흑인이란 이유였다. 하워드대 로스쿨로 바꿔 입학했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법률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불의의 현장에서 온갖 모순과 부딪치며 삶과 사회를 고민했다. 대법관이 된 뒤에는 미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법을 해석했다. 법률가로서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사회를 고치는 엔지니어'.

그런 판사들을 보고 싶다. 정의로운 판결로 사회를 통합시키는 재판, 사회적 맥락과 미래 가치를 적극 고려함으로써 사회의 묵은 숙제들을 전향적으로 해결해 내는 판결, 그럼으로써 역사를 전진시키는 판사가 많아져야 한다. 사법부의 성찰과 변화를 기대한다.
홍덕률 대구대 교수 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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