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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태만 〈파이데이아 공동탐구지도자〉 |
나의 생계를 위한 직업은 은행원이다. 나이는 이 칼럼에 함께 나온 프로필 사진이 젊게 나왔다고 항의 아닌 항의를 받는 50대 초반이다. 칼럼 하단에서는 나를 소개하는 문구에 은행원을 표시하는 대신 나의 부캐(부 캐릭터)를 표시했다. 왜 그러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다.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한 직장 윗분을 몇 년 전에 우연히 마주쳤다. 그분에게서 시간 여유는 무척 많은데 딱히 할 일이 없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과 헤어진 후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까지 고민이 확장되었다. 은퇴 후 인생 설계라고 하면 주로 경제적인 노후 준비를 떠올리고 금융과 관련된 재무 설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돈은 노후 준비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스스로 의미있다고 느끼는 무엇인가를 남은 인생에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아름다운 노년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까지 오랜 은행 생활에 늘 따라다닌 과도한 영업 실적 압박에 짓눌렸고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냐는 회의감에 젖어 있었다. 그즈음 지인의 권유로 '위대한 저서 읽기 프로그램'으로 고전 읽기를 하는 '파이데이아 아카데미아'를 소개받았다. 그때부터 매주 인문고전을 함께 읽고 고전에 담긴 덕목으로 우리 삶을 비추며 토론했다. 더 나아가 독서 후 소감을 글로 정리하며 서평도 쓰기 시작했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물로 '인문의 어깨에 올라 경영을 바라보다' '독하게 독하다'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 등의 공동 저자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한 줄기 여유를 찾게 되었고 심리적 안정감도 늘어났다. 주된 직업 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면 본업에 충실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오히려 다양한 시도와 경험은 무미건조한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본업에 대한 시너지 효과도 키우게 된다. 나아가 이런 활동은 은퇴 후에 할 일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 은퇴 후에도 상당한 기간을 살아가야 한다. 이 시기를 허무하게 보내지 않으려면 어떤 캐릭터로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 당황하지 않도록 말이다.
배태만 〈파이데이아 공동탐구지도자〉
배태만 파이데이아 공동탐구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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