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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번역서의 책제목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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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한의사〉

번역된 외국 도서를 읽을 때 나는 꼭 원제목을 찾아본다. 원제목을 직역하거나 원어 발음대로 옮겨 쓴 책도 있고 번역가가 새로 제목을 지은 경우도 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니 제목을 새로 짓는 것은 번역가의 권한 안에 있다. 어떤 번역서 제목은 원작의 내용을 더 빛나게 하고 어떤 제목은 오히려 원제목만 못할 때가 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어번역판 제목을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모파상이 붙인 원제는 'Une vie' 직역하면 '어느 인생'이라는 뜻이다. 제목이 '여자의 일생'일 때와 '어느 인생'일 때 다가오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여자의 일생' 하면 한 여자의 화려한 인생보다는 불행한 삶이 먼저 떠오른다. '여자'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소설은 시작부터 사고가 제한된다. 2019년에 '어느 인생'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나왔다. 역자는 제목을 기존의 번역서처럼 '여자의 일생'으로 할지 원제 그대로 옮길지 고민했다고 한다. 원제대로 옮긴 건 백번 잘한 일이다. 나는 40년 만에 '어느 인생'을 다시 읽었다. 한 여자의 끝없는 불행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낸 인간 '잔느'의 인생 역정이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싶다면 '여자의 일생'이 아닌 '어느 인생' 번역본을 권하고 싶다.

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 '빵굽는 타자기'는 원제보다 번역이 더 잘 된 책이다. 제목에서 벌써 작가가 생활고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원제는 'Hand to Mouth'로 어렵사리 겨우 살아가는, 입에 풀칠하기라는 뜻이다. 제목을 원제대로 '입에 풀칠하기'라고 했다면 너무 직설적이라 문학적이지 않다.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다'라고 작가는 고백했다. 그는 10대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글쓰기에 지장이 되는 직장은 피했다. 책은 아슬아슬하게 파산을 면하고 나면 또 돈이 바닥나고 어찌어찌 해결했다는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은행가는 모이면 예술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는 모이면 돈이야기를 한다'고 꼬집었다. 와일드의 말처럼 오스터의 젊은 날은 돈, 돈이야기였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한길로 매진한 그의 타자기는 빵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이은경〈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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