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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미〈주〉한초 대표 |
몇 년 전 제주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문화거리를 찾았다. 4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화가 이중섭이 거주했던 초가를 중심으로 삽화와 기념품, 수공예품을 파는 쇼핑가게 등이 소박하게 모여 있었다.
얼마 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은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12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이밖에 이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 작품만 100점이 넘는다고 하니 이중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나 보다. 문득 이중섭의 작품 '황소'와 은지화(銀紙畵)가 머리를 스친다. 이중섭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황소'는 붉은 바탕에 금방이라도 우렁찬 울부짖음을 뱉어낼 듯한 굵직한 울림을 자아낸다. 은지화는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애절하기만 하다. 대구 미문화원장이었던 아더 조셉 맥타가트가 이중섭의 은지화 3점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해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풀뿌리까지 찾아 연명한 시기에 젊은 화가는 한국인에게 희망과 생명력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고 싶었으리라. 작품은 단지 작가의 교묘한 손놀림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와 열정, 스토리 그리고 시대 상황까지 고스란히 담긴 '예술혼의 산물'이다. 작품을 재력가들만이 향유하는 돈의 사치품으로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자못 부끄러워진다.
이 회장이 기증한 미술품들은 값비싼 상품을 돈과 맞바꿔 소비한 물건이 아니라, 깊은 관심과 열정으로 평생 애지중지하며 간직해 온 유산이다. 그가 국민들에게 두고두고 느끼고 감상할 기회를 준 것임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는 화가거리나 체코 프라하의 길거리 화가, 미국 뉴욕 중심 길거리에서 관광객의 초상화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던 화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화가든 관광객이든 그 순간만큼은 열정과 편안함 속에 빠지게 된다.
시간이 되면 1만원 지폐 속 세종대왕 얼굴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 충북 청주 김기창 화백의 운보미술관,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 신안 김환기미술관, 강원도 홍성의 고암 이응노의 생가 기념관 등 근현대 한국미술을 이끌어 온 화가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그림 여행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봐야겠다. 그런데 왜 대구에는 이쾌대와 이인성미술관이 없을까.
김명미〈주〉한초 대표
김명미〈주〉한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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