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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
나는 늘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분야 최고는 아니지만 중간 정도는 해냈다. 공부도 운동도 큰 노력 없이 중간치기는 했다. 그래서 그럭저럭 무난히 자랐고 생활했다.
그런 '나'이지만 간혹 내가 '잘 해낼 수 없는 일'을 만난다. 그럴 땐 매우 당황스럽다. 나의 선택은 '도망'이다. 회피. 아예 처음부터 "나는 그런 거 재미없어, 나는 그런 거 싫어해"와 같이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선 줄행랑친다. 내가 잘못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공연을 앞두고 꽤 고전하고 있는 요즘 '도망' 치고 싶다. '대놓고 코미디' 장르는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코미디란 호흡, 템포, 능청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하는데 나는 영 불협화음이다. 게다가 같은 장면에 디렉션(지적)을 여러 번 받다 보니 내가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창피하다. 이럴 땐 "그래 난 코미디 장르는 별로야. 이런 연기 스타일 안 맞아"라고 하면서 '도망'치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어 무척 괴롭다. 공연을 펑크낼 수는 없지 않은가. 괴로운 마음을 꾸역꾸역 누르다 보니, 해서는 안 되는 생각까지 이른다. 대충할까? 그럴싸해 보일 만큼만 할까? 안되지. 배우 자존심이 그건 허락 못하지. 안다. 이 괴로움을 떠안고, 내가 잘못한다는 걸 인정하며 어떻게 해서든 계속해대면 그 끝엔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대학 시절 친구들이랑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놀깨비인 나는 뭐든지 좋아 친구들을 따라다녔다. 딱 한 군데 '당구장'만 빼고. 뭐 기다란 막대기를 잡는 손도 어색하고 공은 또 어떻게 맞추라는 건지. 처음엔 적당히 둘러대며 가지 않겠다고 손사래쳤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다 간다는데 더는 뺄 수가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친구 중에 한 명을 붙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1대 1 교습을 받았다. 아침의 어설픈 대질이 저녁이 되니 제법 익숙해졌다. 원하는 대로 공을 굴리고 친구를 몇 번이나 이겼다. 도망치지 않고 '극복'해본 나의 첫 경험이었다.
경험의 분야가 너무 다르지만 메시지는 같다. 도망칠 수도 없을 때는 하는 수밖에 없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부족함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연 시작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해보자. 오기를 발동해본다.
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정선현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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