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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미애의 문화 담론] 삼성家 컬렉션, 이병철 회장이 우리 문화유산에 매료돼 컬렉션에 눈 뜬 곳 '대구'

2021-06-25

1938년 故 이병철 회장 고향 경남서 처가 사는 대구로 올라와 삼성상회 설립

금동불상·토기 등 가야-신라시대 국보 보물급에 애착, 고미술품 2천여점 수집

이건희 회장, 근현대 미술품·세계 명작 컬렉션 개인소장품 2만3천여점 기증

삼성가 父子 연고, '이건희 미술관' 유치통해 삼성모태 관광코스와 연계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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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서의 호암 이병철. 〈사진=간송문화재단>

프랑스 파리 센 강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수장고의 미술품만도 무려 48만여 점. 이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와 밀로의 조각 '비너스상' 등 대표적인 전시 작품이 3만5천여 점에 달한다. 파리 투어 코스 제1목록에 들어 있어 우리 한국 관광객들도 한 번씩 관람했을 것이다.

루브르는 원래 왕궁이었으나 17세기 루이 14세(1638~1715)가 베르사유 궁전으로 옮기면서 왕실 소유 미술품 수장고로 사용하기 위해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왕실의 후원으로 수장고를 관리하면서 아틀리에(작업장)를 운영했다. 이후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상설 전시장 '살롱 카레'를 열어 화가·조각가들을 양성했다. 오늘날 세계 최대 박물관인 루브르의 역사와 전통이다.

역사와 전통을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은 규모 면에서 감히 루브르를 따라갈 수 없지만 구겐하임에 버금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역사성이나 전통성을 떠나 비슷비슷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서울·수도권에만 100여 곳이나 몰려 있고 정작 출토 유물이 많은 대구·경북에는 고작 5곳밖에 없다. 지방분권시대에 중앙집중식 통치를 고집해온 정치 권력의 영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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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이병철(왼쪽) 삼성그룹 창업주와 유년시절 이건희 회장.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고인의 뜻에 따라 소장 미술품 2만3천여점(감정가 약 3조원)을 국가에 기증하자 서울을 비롯해 대구·부산·수원·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개인 소장품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 컬렉션 중 고미술품 2천여점은 선대 이병철(1910~1987) 회장이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대구·경북에서 출토된 금동불상과 금속공예품·토기 등으로 가히 감정가를 추정할 수 없는 수천 년 전 가야·신라 시대의 희귀한 국보·보물급이 50여 점이나 된다.

대구는 삼성가(家)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병철 회장은 1938년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처가(달성군 하빈면 묘동)가 있는 대구로 올라와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제분업과 제면업으로 부(富)를 축적했다. 오늘날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의 창업지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이병철 회장이 우리 문화유산에 매료돼 컬렉션에 처음으로 눈을 뜬 곳도 역시 대구이다.

그는 원래 서부 경남의 거유(巨儒)이던 조부와 선친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지필묵(紙筆墨)을 가까이하며 서예를 익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벼루에 먹을 갈 때 물을 담아 쓰는 조그만 도자기류인 연적(硯滴) 빛깔에 반해 연적 수집을 취미로 삼았다. 이후 영롱하고 담백한 멋을 풍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심취하게 된다. 대구에서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고 시인 묵객들과 어울려 망중한을 즐긴 연유다.

자주 주연(酒宴)을 베풀며 국악에도 취미를 가졌으나 무엇보다 고미술품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했다. 하여 고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심미안(審美眼)을 키우고 마침내 금동불상·금속공예·석조유물 등 다양한 컬렉션에 대가(大家)를 이룬 것이다. 특히 신라·가야 시대의 출토 유물에 유달리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의 회고록 호암자전(湖巖自傳)에 따르면 고미술품 컬렉션 중 국보로 지정된 가야 금관은 경북 고령군 지산리 대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1970년대 초 검찰 수사에서 도굴품임이 밝혀져 큰 수난을 겪었다. 취향이 같은 형 이병각(서울제일병원 설립자)씨가 이 금관을 사들여 문화재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이병철 회장이 소유권을 넘겨받아 동산 문화재로 신고했다고 한다.

역시 국보급인 진사연표형(辰砂蓮瓢形) 및 상감운학(象嵌雲鶴) 고려청자는 일제 강점기 강화도 고분에서 도굴돼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유산. 1960년대 말 이병철 회장이 일본 출장길에 도쿄의 골동품상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거금 100만 달러를 들여 되찾아 왔다. 현재의 외환 시세로는 적어도 1억 달러(1천200억원) 이상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화 밀반출이라는 투서가 청와대에 들어가 적지 않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결국 자신이 운영하던 사학재단 대구대학(영남대학교의 전신)을 정부에 헌납하는 조건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선대 이병철 회장 별세 이후 삼성의 경영 대권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근현대미술품 컬렉션에 눈을 돌렸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부인 홍라희 여사와 함께 삼성 리움을 설립하고 국내외의 세계적인 명작 컬렉션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부르는 대로 값을 치렀다고 했다. 하지만 수천 년 땅속에 묻혀 있다 출토된 선대의 고미술품 컬렉션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병철 컬렉션이 재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러한 컬렉션의 연고성과 역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증자 이건희 이미지만 부각시키며 국립근대미술관을 서울에 설립하겠다고 한다. 연고지 대구를 따돌리기 위해 언론 플레이도 서슴지 않고 있다. 서울이 이건희와 삼성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만 이건희 회장이 서울시민이었고 삼성 본사와 사업장이 서울·수도권에 산재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의미 없이 서울에 미술관 건립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전시효과만 노린 맹목적인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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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북구 삼성창조캠퍼스 내에 복원된 삼성상회 건물. 삼성상회는 1938년 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기업 경영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뜻을 펼치기 위해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대구시는 애초 이병철·이건희 부자와의 인연과 연고를 대구의 역사와 전통에 접목시키기 위해 아예 자체 예산 2천500억원을 들여 별도의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정부에 제안하고 범시민 모금운동까지 벌여왔으나 자칫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대구시는 이미 북구 산격동 옛 경북도청 부지에 이병철·이건희 미술관과 함께 세계적인 학술문화재단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를 설립할 계획도 마련해 놓고 있다.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와 주변의 풍광도 아름답다. 미라보 다리 밑으로 흐르는 파리의 센 강처럼 대구의 젖줄 신천이 흐르는 도청교를 지나면 한 블록 거리에 대구혁신센터 삼성창조캠퍼스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삼성의 모태인 옛 삼성상회 건물이 복원돼 있고 이병철 회장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해온 제일모직 사옥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삼성의 산업문화유산이 오롯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건희 회장이 태어나 자란 호암고택도 이곳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다. 관광 코스로는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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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나 일부 지방정부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한결같이 이건희 컬렉션만 포장하고 있으나 선대 이병철 컬렉션부터 먼저 살펴봐야 삼성가 컬렉션의 역사를 말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의 뿌리가 선대 이병철 회장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병철 컬렉션을 빼고 이건희 컬렉션을 함부로 논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미술계 평단의 견해다. 대구시민들이 이병철 컬렉션의 반환 캠페인이라도 벌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이미애 계명대 외래교수·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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