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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운수 좋은 날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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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극단 나무의자 대표〉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오후. 창밖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정신없이 비를 피해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이때 나는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 한 분을 바라본다. 수레 높이의 두 배는 됨직한 폐지의 무게를 견디며, 그것들이 비에 젖는 것을 염려하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는 걸음이 황급하다.

문득 현진건(玄鎭健)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났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을 못한'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그날은 이상하게도 운수 좋은 날이었다. 웬일인지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 끊이질 않더니 벌써 팔십 전을 벌게 된 그는 너무 기뻤다!

허허, 이게 웬 행운인가? 일을 마치고 모주 한잔을 걸치고, 또 며칠을 아파서 누워 있는 마누라가 먹고 싶다는 설렁탕 국물도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에게 죽을 사 줄 수도 있게 됐다. 그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1원50전으로 정류장까지 태워 달라는 학생 손님을 만나 인력거를 끄는 행운까지 얻고서 그는 돈 벌 용기에 병자에 대한 염려가 사라졌다. 하지만 엄청난 행운에도 그의 가슴을 누르는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하던 마누라의 말이 계속 켕긴다. 그는 또 한 차례의 벌이 후 이 '기적'적인 벌이의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 선술집에 들러 모주를 들이킨다. 마누라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 술주정을 하며 기어이 1원어치 곱빼기를 더 마신 후 설렁탕 국물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미 숨진 마누라와 빈 젖꼭지를 빨고 있는 개똥이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았던 날 닥친 마누라의 죽음에 김첨지는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이 소설은 반어(反語)에 의해 그 비극적 효과가 잘 드러난다. 하나의 초점을 향해 매우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며, 끊임없이 환기되는 불결한 겨울비의 이미지는 아내의 죽음을 예시하고, 김첨지가 처한 '추적추적'한 환경 자체를 상징한다.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비는 그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미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처럼 반어적 표현이 아닌 진정 그들에게 오늘이 '운수 좋은 날'이었으면 하고 나는 희망해 본다.
김민선〈극단 나무의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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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선 극단 나무의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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