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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동양에서는 왜 수묵그림인가

2021-08-10

이중희
이중희〈미술사학자〉

유학 연구에 빠졌던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는 문화에서 시서화(詩書畵) 3절에 빼어났다. 3절이라 함은 3가지를 한 몸처럼 필수로 익혀야 함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수묵문화다. 그 점이 원초적인 의문이다. 하필이면 하고 많은 색 중에서 왜 시커먼 색이 뭐가 좋다고 먹(墨)문화를 그렇게 중시했을까.

선비들이란 원래 묵필로 학문하는 삶이기 때문이라고 반색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답은 그것이 아니다. 근원을 지향하는 중국사상에 있기 때문이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함유한 가장 근원적인 색이다. 근원색을 달리 현색(玄色)이라 한다. 그래서 검은색인 묵색으로 그림을 그린다. 중국에서도 원래 고대부터는 먹색이 아닌 채색그림이었다. 그러다 선비문화가 정착되는 당나라에 와서 수묵그림으로 바뀐다. 수묵으로 산수화를 처음 그린 화가가 시인 왕유(王維)다. 그 후 선비사회에 이른바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색으로 치부되었다.

산수그림을 선호하는 것도 동일한 이유이다. 모든 중국사상은 우주의 근원지를 하늘(天)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천인합일(혹은 자연합일)에 두고 있다. 땅에서도 천(天)의 범주에 속하는 곳이 있다. 사람의 손발이 닿지 않은 첩첩산중의 심산유곡이다. 천인합일 정신이 심산유곡의 산수와 하나가 되려는 자연합일 정신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산속의 탈속적인 삶, 이것이 선비들의 꿈이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 많은 태백산맥 속으로 들어가 산속 삶을 영위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림에서도 수묵으로 심산유곡 산수를 그리는 수묵산수화가 유행했다. 반면 서양 풍경화는 세속적인 인간 삶의 현장을 그린 것으로 탈속세계의 산수화와는 격이 달라 '속(俗)'이냐 '탈속(脫俗)이냐'의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 특히 선비의 고장 영남에서는 예술문화면에서도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전국에서 유난히 강한 지역이었다. 그 이유가 있다. 천륜(天倫)을 거역하여 나라를 강탈한 천하 무도함에 대한 반감도 남달랐지만, 화려한 채색그림인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의 최고 선비화가 석재 서병오 선생은 일본화의 유행을 막으려고 1922년에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조직하여 전통 수묵문화를 수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국에서 유일한 일본 채색화 거부단체다.
이중희〈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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