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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서민의 開소리] 인터넷이 만든 괴물, 대깨문

2021-09-14

사모펀드와 입시비리에 연루
표면적으로 정의를 외치면서
사법부 판결마저 부정하는 者
'개혁의 화신'이라 여기고 응원
비정상적 사고의 연결 집합소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능케 해

2021091301000390000015771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대학교 때 난 야구광이었다. 프로야구 팀순위는 물론이고 각 선수의 타율과 홈런 숫자 같은 것을 줄줄이 외우곤 했다.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타율은 변하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외웠을까? 학교에 갈 때 스포츠신문 한 부를 산 뒤 줄을 치면서 타율을 비롯한 각종 기록을 외웠고, 집에 가는 길에는 저녁판 스포츠신문을 사서 내가 외운 걸 복습했으니까. 의대생이란 한계 때문에 경기장에 가거나 TV로 야구중계를 보는 일은 드물었지만, 줄을 쳐가며 공부한 덕에 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야구전문가가 됐다. 하지만 난 전문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왜였을까?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느끼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친구1: 최동원 투수가 최고야. / 친구2: 아니야, 선동열 투수가 더 잘해. / 친구1, 2: 앗? 야구전문가 서민이 지나간다! 민아, 최동원과 선동열, 누가 더 잘해? / 서민: 좋은 질문이야. 1984년 27승을 거둔 최동원의 활약은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는 엄청난 것이지만, 너무 혹사당한 탓에 부상이 일찍 찾아왔어. 야구에선 누적 기록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뛰어난 활약을 더 오랫동안 한 선동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 친구2: 거봐. 내가 맞지? / 친구1: 분하지만, 서민이 그렇다면 인정할 수밖에.

안타깝게도 야구에 관한 의견을 묻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은 인간의 뼈와 근육 이름 대신 야구 타율이나 외우는 날 한심하게 바라봤다. 외로움을 이기려 혼자 야구 퀴즈를 내고 혼자서 푸는 기괴한 짓을 하면서 난 내가 이상한 건 아닌가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소개팅을 나갔을 때 상대방 여성한테 들은 다음 말은 충격이었다. "무슨 대학생이 야구 얘기밖에 몰라요" 그 후 내 야구사랑은 시나브로 시들었고, 나중에는 선수들 이름이나 겨우 아는 정도가 됐다.

그로부터 10년쯤 후 인터넷이란 게 생겼다. 모든 정보를 즉석에서 검색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인터넷의 가장 큰 기여는 기이한 취미를 가진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줬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인터넷의 야구 사이트에 들어가 본 난 깜짝 놀랐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끼리 퀴즈를 내고 맞추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6년 선동열 선수는 몇 승을 올렸을까요' 같은 초보적인 문제를 맞췄다고 야구박사 취급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난 속이 쓰렸다. 아, 내가 야구를 좋아하던 시절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야구 사이트에서 '신'으로 추앙받았을 텐데. 하지만 '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야구 정보를 외웠을 테고, 그러느라 내 본업을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다. 야구에 탐닉한 날 한심하게 여긴 친구들 덕에 난 석·박사를 딴 뒤 교수가 됐고, 지금은 한국 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국 전 장관이 재판에 출석한 9월10일,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지자로 보이는 여성 네 명이 물수건으로 조씨의 차를 구석구석 닦았다. 조씨가 이날 재판에 나간 이유는 2018년 연세대 대학원 지원 과정에서 저질러진 아들의 입시비리 때문이었다. 조씨 아들은 처음에 경력란이 비워진 서류를 냈다가, 허위경력 7개가 추가된 서류를 다시 제출함으로써 입시 공정성을 해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조씨 부부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 서류 중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법무법인에서 발급된 인턴증명서는 이미 재판에서 허위임이 인정돼 최 의원은 의원직 상실에 해당되는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터였으니, 조씨가 무죄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금 의사로 근무 중인 조씨의 딸까지 허위서류로 의전원에 합격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조씨는 '자녀에게 무관심했다'는 장관 청문회 발언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입시비리에 가담했다고 할 수 있다. 외압에 맞서 조씨의 죄를 따져묻는 검사의 차를 닦아줬어도 말이 나올 텐데, 유죄가 확실한 피고인의 차를 닦다니 과연 제정신일까? 당연하게도 댓글 반응은 참혹한 수준이었다. "북한 사람들 김정은 보고 눈물 흘리는 것 같아요" "범죄자 차 말고 당신 남편 차나 그렇게 세차해 줘" "저 아줌마 가족들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위에서 이 광경이 익숙하다고 한 이유는 이들이 작년 5월에도 똑같은 광경을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으니, 이들은 확신범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마이크를 갖다 댄 기자에게 "조국 선생님 개혁을 끝까지 함께 한다는 의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인터넷이 없던 1990년대였다면,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사모펀드와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사법부 판결마저 부정하는 이를 개혁의 화신으로 여기고 응원하는 이가 있다면, '또라이' 취급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런 이들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내가 틀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줬다. 이런 이들의 집합소인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을 보자. 그들은 레거시 미디어를 선택적으로 불신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는 적극 이용하지만, 조국 전 장관에게 불리한 기사는 모조리 가짜뉴스로 몬다는 얘기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건 김어준의 뉴스공장뿐, 거기 나온 내용은 절대적 진리가 돼서 온종일 반복·재생산된다. 정경심 구속 같은 뉴스에 불안했던 이들은 클리앙의 글들을 보며 평화와 안정을 되찾는다. 여기에 반하는 글이 올라오면 어떻게 될까? 진실이 얼어붙은 클리앙에 봄을 가져다주고자 회원가입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분란조장 등을 이유로 신고당했고, 운영자는 내게 6개월의 이용정지 처분을 내린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6개월이 지난 뒤 다시 접속했더니 이번에는 3년 이용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조 전 장관이 잘못했다는 이들은 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기에, 클리앙에는 '조국은 예수다' 같은 글들만 올라올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클리앙을 대깨문이라 규정하고 한심해하지만, 클리앙 이용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왜? '조국=예수'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그 사이트엔 우글우글하니까. 심지어 그들은 이런 말도 한다. "다른 사이트들은 다 일베한테 점령당했고, 오직 클리앙만 상식이 지배하는 사이트로 남았다." 문대통령이 물러나도 대깨문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많고, 인터넷은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주니 말이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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