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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악산 산등성이를 따라 위풍당당하게 선 풍력 발전기 아래에 청보라, 진보라, 분홍보라 등 온갖 보랏빛의 아스타가 피어 장관이다. 여름에는 샤스타데이지가, 가을에는 보랏빛 아스타와 구절초, 억새가 뒤덮는다. |
산기슭의 자드락이 온통 노랑이다. 차곡차곡 일구어낸 계단식 논들은 초록의 계절 동안 보호색을 입은 듯 산빛에 감춰져 있다가 산과 나무가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가장 먼저 샛노랗게 일어선다. 거창은 읍내만 벗어나면 어디든 산이라 눈 닿는 곳마다 노랑이다. 휘어지는 길가의 손바닥만 한 삼각의 땅마저도 노란빛이다. 노랑에 빠져 흐느적대는 동안 몇 대의 차들이 쌩하니 앞질러 간다. 몸도 마음도 바쁘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안다. 그들은 감악산으로 간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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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초 꽃밭 저 멀리 거창에서 나고 자라고 만들어진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부스가 줄지어 서 있다. 멀리 지리산이 희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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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랭지 채소와 약초를 재배하며 거의 황무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던 감악산 정상은 현재 '감악산 항노화웰니스체험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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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개소한 한국천문연구원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 |
◆꽃으로 뒤덮인 감악평원
감악산(紺岳山)은 거창의 진산이다. 검은빛을 띤 푸른 큰 산, 감악산이라는 이름은 거룩한 산, 신령스러운 산 또는 큰 산을 뜻하는 '감뫼'로 곧 여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해발 952m의 높이는 지나치다 싶게 가파른 임도를 품고 있는데 몇 년 사이 길이 조금 넓어진 느낌이다. 초입에 한 아저씨가 오가는 차량의 운행을 안내하고 계신다. 휘어져 갈라지는 산길 가의 작은 삼각의 수풀 위에 서서 꾸벅 인사도 하신다. 순정한 부지런에 송구해진다.
연수사(演水寺) 이정표를 지나친다. 조선 숙종 때 벽암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신라시대에는 감악대사가 세운 감악사(紺岳寺)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따서 '감악산'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연수사 앞에는 600살 된 은행나무가 있다. 머지않아 노랗게 물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가파르고 우뚝해 정수리가 민둥해졌을까. 감악산 정상부는 5만㎡ 넓이의 평원이다. 텔레비전 중계탑이 솟아 있고, 해맞이 전망대가 숲에 가려져 있고,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폐허로 숨어 있고, 한국천문연구원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가 멋지게 반짝이고, 산등성이를 따라 7기의 풍력발전기가 당당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지금 그 평원은 청보라, 진보라, 분홍보라 등 온갖 보랏빛의 아스타로 뒤덮여 있다. 또 하얀 구절초가 무리 지어 흔들리고 노란 감국이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하나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감악산 꽃과 별 여행'이라 적힌 포토존이 있다. 낮에는 꽃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여행, 감악평원은 지금 축제 중이다. 거창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사방팔방이 확 트여 동남쪽으로는 합천댐과 견악산과 황매산이, 북쪽으로는 가야산에서부터 덕유산까지, 서쪽으로는 멀리 지리산까지 조망된다. 가슴이 후련하다.
그동안 감악산 정상은 고랭지 채소와 약초를 재배하며 거의 황무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거창군은 2016년에 정부로부터 전국 최초로 '항노화 힐링특구'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항노화 시책의 일환으로 감악산 황무지의 경관 조성을 시작했다. 감국과 구절초, 도라지 등을 연차적으로 식재했다. 한정된 재원으로 대규모 면적을 조성해야 했던 초기에는 높은 해발과 가뭄, 정상의 강한 골바람 등 열악한 환경과 경험 부족으로 약초가 자라지 않고 꽃이 피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의 전문가를 초빙해 현장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토양분석과 처방, 관수시설 보강, 멀칭 시스템 도입 등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으로 문제점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다. 이제 여름에는 샤스타데이지가, 가을에는 보랏빛 아스타와 구절초,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아스타는 지난해의 2배 이상 꽃을 피우고 있다. 감악평원의 현재 이름은 '감악산 항노화웰니스체험장'이다.
각종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가 있다. 원래 있던 돌탑 전망대 위로 조금 더 높은 전망 공간을 만들고 있다. 아스타와 감국 등 꽃 화분을 판매하는 부스가 있고, 자연의 향을 맡을 수 있는 향 부스, 꽃으로 만든 차를 맛보는 꽃차 부스, 거창 임업후계자들이 선보이는 임산물, 거창 농부들이 키워낸 농특산물 판매 부스도 있다. 커피와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푸드 트럭이 있고 한국사진가협회 거창 지부 작가들이 찍은 거창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작은 무대 같은 국밥집도 있다. 고소한 밥내가 난다. 한우로 끓인 국밥이 실하다. 국밥집은 청연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한다. 청연마을은 감악산 초입의 마을이다. 그리고 6·25전쟁 당시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그 때 84명이 죽었고 5명의 어린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오늘 청연마을 사람들의 검붉은 얼굴이 무척 환하다. 이제 막 도착한 '거창사과꿀빵' 부부에게서 빵 한 상자를 산다. 재료가 모두 국내산이다. 오오, 쌀로 만든 폭신한 빵 속에 촉촉하고 달콤한 사과 페이스트가 가득이다.
◆풍력발전기와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
가득 피어난 꽃들 만큼이나 압도적인 것이 풍력발전기다. 감악산 풍력발전기의 타워 높이는 80m, 날개의 지름은 약 90m나 된다. 저렇게나 커다란 쇳덩이가 깅깅 소리를 내며 에너지를 만든단다. 2015년 건설된 감악산 풍력 발전소는 연간 2만7㎿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는 4인 가구 기준 7천900세대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며, 또한 이산화탄소 1만1천900여t 절감과 20년생 소나무 280만그루 조성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풍력발전기는 소음과 전자파도 만든다. 그래서 풍력사업에는 갈등과 진통이 많고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도 거창 감악산 풍력단지는 충분한 교감을 통해 협력하고 양보하면서 평화롭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국밥집 옆에 조용히 자리한 건물은 한국천문연구원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다. 이곳에서는 한반도 상공의 인공위성을 레이저로 ㎜ 수준까지 측정하고 추적한다. 1957년에 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이래 현재 총 2천여개의 인공위성이 하늘 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많은 인공위성만큼이나 인공위성 간 충돌징후로 생긴 우주쓰레기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우주쓰레기는 초당 8㎞로 날아다니고 있는데, 이는 각국의 인공위성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주공간에 떠다니고 있는 인공위성 물체의 정확한 위치와 궤도정보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예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우주물체 추적 및 모니터링 분야에서 대외 의존도를 감소시키고 독자적인 우주환경감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 시스템을 2008년부터 개발하여 운영 중이다. 그중 한곳이 2015년에 세운 세종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 또 한곳이 바로 2018년에 개소한 감악산 레이저 관측소다. 문 앞에서 사과빵 상자를 들고 기웃기웃 댄다. 지금도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려나. 조용히, 멋지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Tip
12번 88고속도로 거창IC에서 내려 좌회전(로터리 8시 방향)한다. 국농소삼거리에서 우회전, 월평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가다 1084번 도로를 타고 남상면 방향으로 간다. 남상면사무소 지나 약간 더 직진하면 오른쪽 길가에 연수사 이정표가 있는데, 그곳에서 좌회전하면 감악산을 오르는 길이다. 고갯마루에 청연마을 버스정류장과 연수사 이정표가 있다. 임도 따라 산마루까지 직진하면 된다. 감악산 활공장 특설무대에서는 2일까지 각종 공연이 열린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해 제한된 공간에서 정부지침에 준수해 방역을 철저히 하고 공연장 내 배치된 좌석은 선착순 입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거창군에서는 감악산 꽃별여행 웰니스관광 체험객을 모집하고 있다. 17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체험이 가능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인원은 최소 4명 이상이며 산림과(055-940-3485)로 사전 예약하면 된다. 일정은 해먹명상, 아로마 오일 만들기, 숲 체험, 산림욕, 감국차 시음 등이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