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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정재완의 디자인 생각] 팬데믹과 디지털

2021-11-19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비대면 일상…능동적 생각·손으로 기술을 교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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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시대다. 공식적으로는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고 부른다지만 이 표현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위드 마스크'쯤으로 여기며 지난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변화는 지구상의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겼다. 일년 반이 넘도록 코로나를 물리치려고 사투를 벌여왔건만 이제는 함께 살아야 한다. 어느덧 삶의 현장은 원격 수업, 재택근무, 화상회의, 웨비나 등 비대면으로의 진행이 활발해졌다.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캠퍼스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입학식과 졸업식은 물론이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축제 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대면 행사가 사라졌다. 학과나 동아리 등에서 소속감을 외치던 구호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 학번 차이에 따른 호칭 문제도 조금은 복잡해진 듯하다. 이제는 선배와 후배라는 개념은 느슨해졌다. 중립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나타내듯 '~님' '~씨'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그들조차도 어색하게 느낀다. 호칭이 불편해지면 대화가 줄어든다. 한편에서는 익명성이 강조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젊은 세대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평생을 대면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비대면은 폭탄처럼 터졌다. 난리 같은 상황에서도 대개는 비대면 방식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을 바라봤다. 마치 기다렸던 미래가 훌쩍 다가온 것처럼 새로운 비대면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얼핏 생각하면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도 있다. 온라인 범죄를 보면 익명성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장치였다. 확인되지 않은 가짜 정보가 퍼지는 속도는 진짜 정보보다 6배나 빠르다고 한다. 비대면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쾌적한 비대면이 가능하려면 그에 따르는 도구도 마련되어야 한다. 거주 환경이 곧 교육환경이자 근무환경이 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은 상실감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비대면은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작동방식이 된 것 같다. 비대면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이면에는 폭력적인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존재한다. 대면 현장에서 우리가 취해왔던 관습이 소수를 배려하지 않고 그들을 억압했던 점들은 반성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비대면을 옹호하는 데에는 구태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사람과 직접 만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니 부디 착각하지 마시기를.


갑작스럽게 우리 삶 파고든 거리두기
원격수업·재택근무·화상회의도 정착
넷플릭스·유튜브·SNS 등 소통 확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골라 선택
기술진화 편리함이 생각 규정하기도

기후변화·팬데믹 등 환경변화에 대응
창의·적극적 실천 의지가 효과 발휘



거의 십년 만에 '대면으로' 만난 친구는 내가 어제 앞산 숲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었다. 딱히 숲에 간 일이 비밀은 아니지만 도대체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어보니 친구는 줄곧 SNS 상에서 나를 '눈팅'(반응을 보이지 않고 게시물을 보기만 하는 행위)해왔던 것이다. 나의 사생활을 눈팅했던 존재가 반가운 친구여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지만 만약 친구가 아니라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일종의 '스토킹'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섬뜩한 공포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SNS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을 가리켜 '관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상 모든 SNS 사용자는 잠재적 관종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의 생각과 모습을 드러내며 누군가가 '좋아요'라고 반응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맛집, 카페, 호텔, 풍경 사진들은 스스로 얼마나 행복한지 '하트'를 가진 익명의 모두에게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자신의 신념과 계몽적 메시지는 공감할 수 있는 익명의 '좋아요' 친구를 찾는 행위들이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자꾸만 들락거리는 이유는 바로 '하트'와 '좋아요' 기능 때문이다. 이런 기능은 누군가의 이야기나 의견에 대해서 공감하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준다.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서로에게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가 곧 우리의 관심사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낼 수 있다. 단, SNS에서만 말이다. 그곳을 벗어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SNS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수 있는 착시의 현장이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의 맞춤 마케팅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에게 침투한다. 휴식을 취하려고 침대에 누우면 그때부터 넷플릭스·왓챠의 세상이 열린다.(이 회사들이 침대 매트리스나 베개를 팔면 분명히 잘 팔릴 거다) 이곳에서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제공된다. '배트맨'을 보고 나면 범죄와 영웅을 다룬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해준다거나 '스타트렉'을 보고 나면 온갖 우주배경의 SF 영화나 시리즈물이 내 화면을 가득채우는 방식이다. 내가 미처 몰랐던 영화를 추천받는 스마트하고 신박한 기능이 무척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떠먹여주니 편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이 추천 목록이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예측가능한 것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는 이런 추천이 나의 다양한 감정과 사고를 어떤 틀에 가두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불쾌함마저 들었다. 인간은 예상치 못한 것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흥과 쾌감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굳이 야생적 사고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나는 지나치게 시스템화되어가는 각종 제도에 따분함과 더불어 어떤 위기감을 느낀다.

"플랫폼 기업들은 무비판적 '편리함'을 생산하고 강제합니다." 어느 날 홍진훤 작가로부터 받은 한 통의 e메일은 이런 위기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었다. 'Destroy the code' 프로젝트는 유튜브가 통제하는 세계와 우리의 시각을 되찾자는 작가의 제안이다. 개인의 시청 패턴을 왜곡해서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을 교란하자는 것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무력화하고 월드와이드웹의 개방되고 열린 세계를 다시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자세한 내용은 https://destroy.codes/ 에 접속해서 직접 참여하기를 권한다.) 토끼와 잠수함의 비유가 떠올랐다. 새로 만든 잠수함이 어느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테스트할 때 토끼를 데리고 내려갔다. 인간보다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957년 우주로 발사된 비행선 스푸트니크호에 태운 것도 인간에게 순종적이었던 개 '라이카'였다. 작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잠수함 속에서, 지구 밖으로 발사하는 비행선에서 우리 사회에 지속적인 경고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시각이 더이상 수동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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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사물의 형태를 구현하는 디자인 툴이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쉬워졌다. 급기야 기술이 생각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전을 넣으면 물건이 뚝 떨어지는 자판기 같은 디자인이 적지 않다. 창의적 디자인을 위해서 머리 아프도록 거창한 디자인 담론을 고민하지 않더라도 간단한 구호 하나면 어떨까. "능동적인 생각과 손으로 기술을 교란하자!"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의심과 걱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기후 변화, 차별 금지, 동물 복지 등과 더불어 위드 코로나도 어쩌면 인간의 능동적 실천 속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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