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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정은의 북한 10년과 새 정부의 과제

2022-04-11

북한 김정은 공식집권 10년

'핵무력 완성' 넘어 강화의 길

경제 정상화는 고립 속 한계

내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

北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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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오늘은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2012년 4월11일,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사망 이후 유훈 통치를 끝내고, 공식적인 북한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부터 '광명성 3호'(은하 3호)를 발사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나섰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후에는 '경제와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선언하며 국방력 강화, 특히 김정일 때부터 시작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이어 2월 '광명성 4호' 발사, 8월 첫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수중 발사, 그리고 9월 '5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핵무력 완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2017년 9월 '6차 핵실험'에 이은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과 11월29일 ICBM '화성-15형'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김정은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게 된다.

2018년 김정은은 '경제총집중노선'을 채택하며 경제건설의 걸림돌이었던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시도한다. 특히 4월20일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강조하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다. 이러한 신뢰 구축을 위한 '선제적 선의 조치' 이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판문점 회담, 6월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나섰다. 하지만 2019년 2월27일 하노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완전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김정은 간의 2차 북미정상회담은 결국 '스몰 딜'도 아닌 '노딜'로 끝나고 말았다. 미국은 제재를 풀지 않았고, 북한은 비핵화 추가 조치를 거부했다.

이후 김정은은 싱가포르 합의이행과 제재 완화 등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하며, 남한과의 대화는 물론 미국과의 대화도 거부하고 '자력갱생'과 '국방력 강화'의 길로 회귀하였다. 특히 지난달 24일 신형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감행함으로써 2018년 스스로 선언한 '핵과 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을 완전히 파기했다.

김정은 집권 10년은 김정일의 유훈을 받아 '핵무력 완성'과 이에 기반한 '경제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었다. '핵무력'은 완성했지만 경제는 여전히 고립 속에서 '자력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 실패한 김정은은 오히려 "핵기술을 더 고도화해야 하고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야 한다"며 '핵무력 완성'을 넘어 '핵무력 강화'의 길로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왔다. 또한 미국이 적대 국가인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봄'은 이끌었지만 '한반도 평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다음 달이면 윤석열 당선인의 새 정부가 시작된다. '핵무력 강화'의 길로 들어선 북한을 어떻게 다시 '협상의 장'으로 나올 수 있게 할 것인지 어려운 숙제를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해답은 '한반도 평화의 봄'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끝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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