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요건 논쟁 별개로
선거운동 같은 찬반 운동은
나라를 다시 대선판 만들어
극심한 분열 일으키는 동시
새정부 국정운영 블랙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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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
정권교체기에 민주당이 '검수완박'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이자 국민의힘 일각에선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쳐보자며 일전불사를 선언했다. 당선인 비서실장인 장제원 의원이 앞장선 걸 보면 윤석열 당선인의 의중도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곧 야당이 될 민주당이 다수당의 횡포를 부려 70년 이상 유지된 사법체계를 흔들려고 하니 국민여론에 호소해보자는 판단인 듯하다. 그런데 1987년 개헌을 위해 마지막으로 실시됐던 국민투표의 성격과 절차, 과정을 제대로 살폈는지 궁금하다. 즉흥적으로 '한번 붙어 보자'고 했다면 5년 국정을 이끌어 갈 세력으로서 너무 무책임하다. 혹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제안했다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일단 이 사안이 국민투표 발의 요건이 되는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로 국민투표법이 실효됐다든지 하는 논쟁이 정리되고 실제 국민투표가 실시됐을 경우를 따져보자. 오는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발의할 국민투표는 '국회에서 처리한 검수완법 입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형태로 진행된다. 만일 찬성표가 많이 나오면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스타일을 구기는 데만 그치지 않고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떨어진다. 민주당이 주도한 입법이 옳았음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표가 우세하면 어떨까. 일단 다수당의 횡포에 국민이 분노한다는 점은 확인된다. 그 다음은? 되돌릴 게 없다. 개헌이 아닌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검수완박 입법이 원천무효가 되지 않는다. 그냥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만 작용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투표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초장에 힘이 쭉 빠지고, 좋게 나오면 정신승리에 그치는 셈이다. 그런데 정신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그 대가는 매우 크게 치러야 한다. 국민투표법 제6장 '국민투표에 관한 운동' 조항을 보면 국민투표 찬반운동은 대선 선거운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사안에 관해 찬성하게 하거나 반대하게 하는 운동이 가능한 까닭이다. "정당이 지명한 연설원은 운동기간 중에 운동을 위하여 TV 및 라디오 방송시설을 이용하여 연설을 할 수 있다" "연설회는 정당별로 구·시에 있어서는 각각 3회를, 군에 있어서는 각각 읍·면수를 초과할 수 없다" "한국방송공사는 당해 공사가 경영하는 TV와 라디오 방송시설을 통하여 각 2회 이상 대담 또는 토론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이 밖에도 벽보 부착, 인쇄물 배포, 확성기 사용 등 투표를 하는 선거와 다름없는 운동이 벌어진다.
국민투표운동 기간은 18일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0일 만에 지방선거가 실시되므로 취임식 하자마자 곧바로 전국이 대선 때와 같은 열기에 휩싸일 수 있다. 연설회와 토론회 공방이 '검수완박' 입법의 정당성에만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검수완박의 목적을 얘기하다 보면 윤석열 당선인의 정치입문 과정, 문재인 정권 주변의 비리의혹 등도 모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민투표운동이 모든 국정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대선에서 진 쪽엔 한풀이 장(場)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국민투표에서 윤석열 정부가 이겨도 실익은 없다. 지면 치명상을 입는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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