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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요지경 지방선거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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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동부지역본부장

고대 그리스 사상가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창했다. 간단히 말해 현명한 철인(우주 만물의 원형인 '이데아'를 인식하는 철학자)이 통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는 것. 플라톤이 철인정치에 천착한 이유는 타락한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중우정치의 폐해보다 현명한 독재가 낫다고 여겼을 터. 하지만 현실에서 독재자가 현명한 경우가 있던가. 권력에 미쳤거나 잔혹했을 따름 아니었나.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낫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최선이 아난 차악의 정치모델일 뿐이다. 제도 자체의 맹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가 그렇다. 과연 지금과 같은 선거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공동선에 부합할까? 이에 대한 비판론자도 적지 않은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다수결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음을 수학으로 증명했다. 소위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다. 이외에도 투표의 역설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더 나은 대안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운용의 묘를 살려 민의의 왜곡을 최소화시키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사실 선거의 진짜 문제는 제도적 한계에 있는 게 아니다. 정해진 룰조차 무력화시키는 편법과 반칙에 있다. 우리나라 선거를 보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지 더욱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공정경쟁은 사라지고 꼼수대결이 난무하니 선거판은 늘 혼탁하고 후유증도 심하다. 특히 지방선거가 요지경 속이다. 선거때마다 돈과 연줄을 동원한 온갖 비리와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선거판이 하도 해괴하다 보니 무능하거나 사리사욕만 챙기는 사람들도 쉽사리 당선된다. 사정이 이러니 지방선거가 지방을 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방 정치인도 있지만, 지방발전을 견인할 만큼 다수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보름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제8회 지방선거도 역시나다. 과거 선거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하긴 정당 공천제의 족쇄가 풀리지 않는데 애초부터 지방선거에 대해 기대할 것도 없었다. 알다시피 정당 공천제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보는 지역은 호남과 대구경북(TK)이다. 공천이 곧 당선인 일당 독점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불성설이다. 지방선거가 지역 일꾼이 아닌 중앙당과 국회의원 머슴을 뽑는 선거로 변질된 지 오래됐건만 바로잡힐 기미가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국회의원들이 지방 정치인을 계속 수족처럼 부리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을 비롯한 TK지역 곳곳에서 불거진 사천(私薦)파동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일 아닌가.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내일부터 시작되지만 TK에선 선거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대부분 후보들은 스스로 똥 볼 안 차고 표정관리만 잘하면 될 터이다. 더구나 선거운동조차 안 해도 되는 무투표 당선자들도 수두룩하다. 물론 그 후보들은 행복하겠지만 지방정치에는 불행이다. 약삭 빠르게 줄을 잘 서거나, 윗선에 대한 충성으로 자리를 꿰찬 정치인일수록 위험하다. 그들 중 일부는 일 안 하는 농땡이 정도가 아니라 지방을 망치는 독버섯 같은 존재다. 지방선거가 아무리 마뜩잖아도 '그들만의 리그'로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다. '정치를 외면한 자의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건 지방선거에는 딱 맞는 경구다.
허석윤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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