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미 대통령실 간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해 공급망과 첨단 과학기술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양국이 수시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반도체, 배터리, 원자력, 우주개발, 사이버 등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국방 상호 조달 협정 협의'를 개시하기로 하면서 방산산업의 협력도 크게 기대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동맹이 군사안보 동맹에서 경제 및 공급망 동맹, 기술 동맹을 포괄하는 3차원 동맹으로 확대 강화될 전망이다.

한미 3차원 동맹의 기저에는 반도체와 미국의 국제질서 재편 전략이 있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제4차 산업혁명 범용기술, 자율주행자동차 등 미래산업의 필수재이다. 특히 모든 최신 군사장비들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면서, 그 핵심부품인 반도체는 경제를 넘어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 팬데믹 회복 과정에서 반도체 품귀로 GM, 테슬라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생산 중단 현상을 경험하면서 반도체와 공급망 안정성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경제, 안보, 기술, 공급망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중국은 기술굴기를 기치로 미국의 디지털기술에 대한 추격 속도를 가속화하고, 아시아·아프리카 심지어 유럽에까지 영향력을 크게 확대했다. 미국 상원은 중국의 이런 도전에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중국과의 과학기술 격차 유지'와 '미중 무역 분쟁 장기화 대비'를 목적으로 하는 7개 세부 법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국제 경쟁질서 재편 과정에서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군사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 및 공급망 동맹, 기술 동맹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미중 외교에서 균형자론과 모호성의 원칙, 북핵 정책과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에서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한미 간 상호 신뢰가 크게 손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재결속을 위한 국제질서 재편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한미 3차원 동맹'의 새장이 열리게 됐다.

한미 군사안보 동맹은 다분히 대미 의존적이다. 그런데 경제 및 공급망 동맹, 기술 동맹은 미국이 한국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첫 방문지가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였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가진 미국이 한국을 군사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 및 공급망 동맹, 기술 동맹의 핵심 파트너로 삼았다는 것은 한국의 경제 및 기술의 세계적 수준을 인정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계기로 삼성은 물론 현대자동차, SK, LG 등 한국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더 강하게 요청할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 및 공급망 동맹, 기술 동맹은 철저하게 호혜 원칙과 상호 협력 원칙에 기초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미국은 첨단 설계기술 등 원천기술에서 세계 최강이고, 한국은 생산기술에서 경쟁우위를 갖고 있다. 미래 첨단 기술의 공동 개발, 방위산업의 협력적 개발, 미국 기업들의 아시아 본부 유치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한미 3차원 동맹'을 선진 경제강국으로 도약하는 지렛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미 3차원 동맹이 강화될수록 한중 마찰은 심화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다각적이고 지혜로운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