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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노벨문학상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존 던에게 헌정하는 大 비가'

2022-08-05

신도 악마도 모두 잠든 세계…인간의 죽음 애도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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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자유 외치던 문학청년
소련 추방 15년 뒤 노벨상 수상
모국의 정체성 평생 잊지 않고
망명문학 독창적 창작세계 구축

건조한 시어로 감정의 과잉 억제
삶·죽음·운명에 관한 성찰 전달
러시아 최고의 서정 시인 평가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오시프 알렉산드로비치 브로드스키(1940~1996)는 유대계 출신이며, 러시아 시인이자,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다. 그는 소련에서 추방된 지 15년 만에 미국 시민권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국회도서관으로부터 '올해의 시인'(1991)으로 선정되기도 하면서 이주작가 혹은 망명작가로서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시인의 전기를 집필한 알렉세이 로세프는 "브로드스키가 영어로 시를 쓰면서도 자신을 이중 언어의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작 시를 차라리 하나의 게임처럼 여겼다. 그는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러시아인이었으며, 중년이 되어서도 그런 자신의 입장을 반복했다"며 그의 복잡한 경계인적 입장을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시 대부분은 러시아어로 썼으며, 영어로는 주로 에세이를, 그것도 레닌그라드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회고하는 자전적 에세이와 시론을 쓰는 데 몰두했다. 이처럼 브로드스키의 창작 양태가 보여주듯 그는 소비에트 망명문학이라는 기이한 문학 현상에 나타난 희생자이자 대표작가로 상징되고 있다.

1940년 레닌그라드(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브로드스키는 열다섯 살에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병기창 견습생, 보일러공, 등대지기, 병원 시체안치실 보조원 등의 막일을 전전하며 정규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며 심각한 대인공포증과 말더듬증을 앓을 정도로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하던 문제아였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무 살의 문학청년 브로드스키는 사미즈다트(지하출판) 시 잡지 '문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문학 데뷔를 하였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의 미미한 창작 생활을 겨우 이어가던 문학 초년병에 불과했다. 그러나 1963년 11월29일 석간지 '저녁의 레닌그라드'의 '유사 문학을 행하는 기생충'이라는 기사를 통해 브로드스키가 사회적 공적으로 비판받고 재판에 회부되자, 역설적이게도 그의 재판은 '시인은 직업인가?' '소련에는 창작의 자유가 있는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적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덩달아 그의 작품세계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결국 그는 법정 최고형인 5년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으며 아르한겔스크의 한 벌목장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직업 활동을 기피하는 반사회적인 인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사회적 분위기를 추스르려고 했던 소련 정부의 의도는 빗나가고 공연히 불필요한 논란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브로드스키라는 시인의 등장과 그에 대한 재판은 소위 '해빙'이라는 스탈린 사후의 탈권위주의적 사회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5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해빙의 사회적 분위기는 강압적 스탈린주의에 대한 반대, 정통 레닌주의로의 회귀, 개인과 창작의 자유 보장 등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며 사회적 긴장이 이완되고 있었다. 이러한 해빙의 분위기를 주도한 사람들은 문학,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전반에서 그간 숨죽이던 예술가이었는데, 그들은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끊어진 러시아 모더니즘의 다양한 창작적 실험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브로드스키 역시 시대의 변화에 호응하며 숨겨진 자신의 시적 재능을 통해 아크메이즘(아담주의)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가고자 했다.

브로드스키의 시 세계는 '마치 아담처럼 지상적 존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껴야 하며, 시선에 들어오는 최초의 인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아크메이즘 창작 원칙 아래 세계를 선입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명료한 시어를 추구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아크메이스트적 입장에 안주하지 않고 그는 이십 대 중반부터는 영국 시인 존 던과 위스턴 휴 오든(1907∼1972)의 형이상학 시에서 자극을 받으며 죽음, 불멸, 시간과 공간, 형제애 등의 철학적 명제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시적 주제를 확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인 브로드스키는 러시아적 요소와 비러시아적 요소가 혼합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구축한다. '존 던에게 헌정하는 대(大) 비가 Большая элегия Джону Донну'(1963)는 그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서 브로드스키의 시학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던이 잠들자, 주변 사물이 모두 잠들었다.

사방의 벽이, 마루가, 침대가, 그림들이 잠들었고

탁자, 양탄자, 빗장, 걸쇠,

옷걸이, 찬장, 양초, 커튼이 잠들었다.'

208행에 달하는 이 대(大) 비가에서 단어 나열은 무려 91행에 걸쳐 계속되며 브로드스키의 시선은 존 던의 침실로부터 시작해 집 안 구석구석으로, 창문 너머의 도시로, 자연의 세계로, 다시 신도 악마도 모두 잠들어 있는 천상의 세계로 계속 이동한다. 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에 통상적인 슬픔을 자극하는 정서적 단어들은 일절 등장하지 않고 단지 건조하고 사실적인 시어만이 사용되며 철저히 감정의 과잉이 억제된다. 이는 브로드스키가 시간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모색하면서도 삶, 죽음, 수난, 운명, 공간 등을 시간의 변주가 낳은 하위 테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드스키는 어떤 시인보다도 철학자적 면모를 보이는 형이상학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로드스키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자신의 오랜 굴레였던 유죄판결에서 25년 만에 완전히 복권되고 페테르부크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면서 러시아 시민의 권리를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이미 사망한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여러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또 에세이 작가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1996년 브로드스키는 56세의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1964년 투옥 당시 처음 발병하기 시작한 심장병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하자 해외 망명문학이 러시아 문학에 공식적으로 편입되는데 이때 브로드스키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 이루어졌다. 한때 조국에서 수모를 겪고 추방당했던 브로드스키는 오늘날 러시아 문단에서 20세기 후반 러시아 최고 서정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
공동기획 : KNU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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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과)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 노어노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대 노어노문과 및 동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으며, 프로방스 대학 및 파리 8대학 박사과정에서 DEA를 취득한 후,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세르게이 예세닌의 신농미시와 한국농민문학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 '러시아문학개론'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등과 역서 '부활'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네네츠의 신화-설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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