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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보는 대구문화 아카이브 (37) ] 북춤 전승에 온 힘 김수배, 6·25전쟁으로 해체된 비산농악대 재창단 후 각종 대회서 수상…1986년 '날뫼북춤 예능보유 1호' 지정

2022-08-16

정월대보름 당산서 제사 지내는 것 본 후
지역어르신 찾아 '천왕메기' 개발에도 힘써

김수배

김수배(1927~2006)는 '날뫼북춤 예능보유자 제1호'이다. 19세 되던 해 그는 대구 서구 비산동에 정착한다. 당시 마을 농악대인 비산농악대에 들어가 활동한다. 이후 6·25 전쟁으로 해체된 비산농악대를 재창단했다. 또 서구 비산동 일대에서 전승돼 온 북춤인 '날뫼북춤' 보존에 힘을 쏟았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날뫼북춤 원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비산농악을 모체로 하는 천왕메기 춤을 개발해 전통의 맥을 이어가게 했다.

◆'비산농악대' 입단, 6·25 이후 재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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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뫼북춤 예능보유자 제1호' 김수배. <대구 서구청 제공>

김수배는 1927년 7월26일 경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리동에서 김현주와 석두내의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벌어지는 풍물패들의 놀이를 구경하며 자연스럽게 풍물놀이를 익혔다. 김수배가 처음으로 북채를 잡은 건 16세 무렵이다. 당시 마을 어른들이 논을 매고 난 후 돌아오면서 북을 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면서다.

이후 1945년 김수배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가족들이 자리 잡은 곳은 달성공원 옆 비산동이었다. 그곳에는 상쇠인 최봉수, 종쇠인 임문구 등 젊은이들이 농악을 하고 있었다. 김수배는 이곳에서 동네농악대인 비산농악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 마을 곳곳에는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 농악대가 있었다. 대부분 장구와 북을 치는 정도로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지만, 비산농악대는 전문적으로 농악을 하는 유일한 단체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수배는 형과 함께 입대한다. 전쟁 동안 그는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러던 중 중부 전선에서 중공군과 싸우다가 박격포탄에 양쪽 팔을 크게 다친다. 육군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때의 상처는 평생 통증으로 남아 그를 괴롭혔다.

김수배는 전쟁이 끝난 후 해체된 비산농악대 재창단에 나선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 풍물꾼들이 몇 명 남아있지 않았다. 김수배는 해체된 농악을 재건하기 위해 비산동을 비롯한 평리동, 내당동, 대신동, 원대동 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았다. 계장 이소명, 상쇠 최봉수, 종쇠 임문구, 북잡이 김수배 등 20여 명을 중심으로 비산농악대가 재창단하게 된다. 비산농악대는 대구의 동부시장, 서문시장, 북부시장 등을 비롯해 시장 개장식에 초청되며 활동을 이어갔다.

1960년대에는 전국 곳곳에서 농악경연대회가 열렸다. 이때 비산농악대는 주요 행사를 다니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2년 9월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단체상, 1967년 7월에는 '울산공업단지축제' 특상, 1970년 10월에는 '전국농악경연대회' 1등 등을 차지하며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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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들에게 날뫼북춤을 전수하고 있는 김수배. <윤종곤 날뫼북춤보존회장 제공>

◆'날뫼북춤' 발굴과 '천왕메기' 개발

김수배는 '날뫼북춤' 발굴에 힘을 쏟았다. 날뫼북춤은 비산농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춤이다. 고을 의원이 부임하던 원고개에서 마을 사람들이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면서 원님을 맞이한 것이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또 날뫼북춤은 특이하게 '북'만을 가지고 추는 북춤이다. 한 사람이 추는 독무와 여럿이서 추는 군무로 나뉜다. 연행과정은 덩더꿍이, 자반득,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 순으로 구성된다. 모두 흰옷에 녹색 조끼를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춤을 춘다.

날뫼북춤은 1983년 10월 개최된 '제24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처음 출연해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1984년 7월에는 대구시로부터 '지방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다. 2년 뒤인 1986년 12월 김수배는 대구시로부터 '날뫼북춤 예능보유자 제1호'로 지정받는다. 이후 날뫼북춤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 공연', 1992년 '제 73회 전국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에서 빛을 발한다. 또 1995년에는 '중국 청도 맥주축제', 1997년에는 '일본 히로시마 꽃축제' 등 해외 축제에도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날뫼북춤 발굴과 더불어 김수배는 '천왕메기'를 개발하는 데도 노력했다. 김수배는 어린 시절 고향 청도에서 정월 보름을 전후해 천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비산동에서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비산농악에 천왕메기를 접목하게 된다. 그는 지역의 어르신 등을 찾아다니면서 천왕메기 개발에 힘을 쏟았다. 천왕메기의 행사 과정은 대내림, 제사관 선출, 사당 앞까지 가면서 질굿하기, 사당문 앞에서 문굿을 벌임, 고사 지내며 축문읽기, 천왕메기, 판굿으로 이어진다.

1984년 9월 그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천왕메기로 참여한다. 1988년 10월에 참여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한다. 천왕메기는 이후 1989년 6월에는 대구시로부터 '지방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받는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참고문헌: 임언미의 '대구, 찬란한 예술의 기억', 유대안의 '날아온 산, 사람들 그리고 날뫼북춤', 대구 서구청 문화관광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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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기자

영남일보 정지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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