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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의 제3의 눈] 죽은 기자의 사회

2022-09-09

기자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과녁 삼아 공격하는 것은

2000년대 들어 벌어진 현상

온갖 정파들이 언론 불신

기자 살해로 보복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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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당신이 미카 야마모토를 잘 안다고 하던데?" "그저 몇 번 만났을 뿐." "미카 남편은?" "사토 카즈타카도 마찬가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만난 게 다였다."

엊그제, 전선기자의 죽음을 취재한다며 난데없이 찾아온 한 오스트레일리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 옛날 기억을 끄집어냈다.

일본 언론인 미카와 사토를 만난 건 25년 전 아프가니스탄전쟁 취재 때였다. 그 뒤 서로 연락이 끊겼다가 꼭 10년 전 이맘때 미카가 시리아전쟁을 취재하다 총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재 현장에서 맺은 인연 가운데 목숨 잃은 열두어 번째였다.

한데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기대와 달리 나는 별 도움을 못 줬다. 미카를 잘 모르는 판에 마치 전선기자 대표선수마냥 주절대기가 몹시 거북했던 탓이다. 이념도 목적도 저마다 낱낱이 다른 전선기자를 하나로 뭉뚱그려 말할 재주도 없거니와 자칫 입을 타고 무용담으로 변질되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했으니. 오래 전 한 출판사가 미카 유고집을 내면서 내게 부탁한 추천사를 정중히 거절했던 것도 같은 뜻이었다.

그렇게 미카를 달고 온 오스트레일리아 감독은 전쟁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며 두어 시간이나 나를 붙들어 맸다. 그의 화두는 직유든 은유든 내내 "전쟁터 취재가 두렵지 않나"였다. 마치 로봇임을 자백하라는 듯! 늘 들어온 말이었고 늘 대꾸하기 마땅찮았던 나는 또 뻔한 말로 둘러댔다. "세상에 전쟁 안 무서운 놈 있겠나. 직장이라 여기고 가는 거지."

서먹서먹한 자리 끝에 "미안하다. 내가 전쟁 취재하다 죽어본 적 없어 속 시원한 답을 못 준 것 같다"며 헤어졌지만 하루 내내 맘이 무거웠다.

"전쟁 취재하다 죽을 확률이 교통사고보다 낮다."

전선기자들이 대물림하며 입에 달고 다닌 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의 제2차 이라크 침공(2003~2011년)이 좋은 본보기다. 그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이 4천507명인데 살해당한 언론인이 자그마치 283명에 이른다. 비무장 시민인 언론인 죽음이 미군 전사자에 견줘 5%나 된다. 이런 전시 언론인 사망률은 전사를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이라크전쟁이 다가 아니다. 시리아전쟁(2011년~현재)에서도 언론인 153명,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도 언론인 27명이 몫몫이 살해당했다.

1992년부터 오늘까지 전쟁과 분쟁에서 살해당한 언론인이 2천168명이다. 해마다 어림잡아 70명 웃도는 언론인이 죽어 나간 셈이다. 집계에 잡힌 수만 따져도 그렇다는 말이다. 실종이나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까지 다 찾아낸다면 그 수는 몇 배에 이를 게 뻔하다. 전쟁을 먹고 사는 군인을 빼면 그 어떤 직종보다 많은 이들이 살해당했다는 뜻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에서 살해당한 기자는 흔치 않았다. 거의 오인 사격이나 오폭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였다. 목적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딜 가나 기자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과녁 삼아 공격하는 건 2000년대 들어 벌어진 현상이다. 바로 세계시민사회에서 '쓰레기 기자'란 말이 나도는 이 언론불신의 시대와 한 궤를 탄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온갖 정파들이 저마다 언론을 향한 불신감을 기자 살해로 보복한 꼴이다. 먼저 간 기자들이 쓰레기인지 아닌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나처럼 살아남은 모든 쓰레기들 대신 희생당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동료 기자들을 죽인 나쁜 놈들을 욕하다 나를 돌아본다. 정신이 번쩍 드는 아침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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