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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하용준의 閑談漫筆] 제사상 음식

2022-09-23

전통, 현대 족쇄 채워선 안돼
후손들에 환영받지 못하는
허례허식은 고집 말아야
우리가 즐기는 음식으로
제사 지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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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준 (소설가)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올린다. 그중에서 과일은 조율시이(棗栗枾梨)라고 해서 상의 맨 앞줄 왼쪽부터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진설한다. 속설에 따르면 대추는 씨가 하나라서 임금을 뜻하고 밤 세 쪽은 삼정승, 감은 씨가 여섯 개라서 육조판서, 배는 씨가 여덟 개라서 팔도관찰사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후손들이 높은 벼슬에 오르도록 조상에게 도와달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속설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다른 과일의 의미는 일견 수긍이 가지만 대추의 의미를 보면 임금이 되게 해달라는 말이 되지 않는가? 무엄하게도 대역 죄인이 되는 길이다. 또 임금을 뜻한다고 하면서 대추를 제사상 한쪽 구석에 놓아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임금은 늘 가장 높은 곳의 중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추는 자손번창을 의미한다. 한 나무에 수없이 많이 달리고 또 떨어진 자리마다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자손의 번창에 있어서 부부금슬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밤은 형제우애를 뜻한다. 한 껍질 속에 사이좋게 가지런히 들어있는 모양은 꼭 한 이불을 덮고 자는 형제자매들 같다. 감은 고진감래를 비유한 것이 아닐까? 감은 처음에는 쓰고 차차 단맛을 더해 홍시에 이르러서는 그 맛이 절정을 이룬다. 배는 누런 황금빛이 나니 부귀영화를 뜻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 자손이 번창하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고 고생 끝에 좋은 날을 맞이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조상에게 비는 의미가 된다.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은 먹기 좋은 음식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음식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조미료를 쓰는 현대의 갖가지 조리법은 거의 반영하지 않고 소금과 간장뿐이었던 옛날 방식 그대로 조리하고 있다. 그러니 제사 음식이 요즘 젊은이들 입맛에 맞을 리 없다. 그런 음식을 종류마다 대량으로 장만해야 한다. 또 제사 음식은 음복(飮福·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나누어 먹음)만으로 사후 처리가 온전히 되지 않는다. 이렇듯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사 음식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 대신에 피자를, 삶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대신에 돈가스나 치킨을, 소고기산적 대신에 스테이크를 제사상에 올리자고 한다면 호되게 경을 칠 일이 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똑같은 음식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드느냐 하는 조리법의 차이일 뿐이다. 조상도 늘 같은 음식을 대하면 물릴 것이다. 호기심에서라도 후손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함께 먹어보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조상이 된다면 그렇지 않겠는가? 퓨전이다 하여 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장점을 주고받으며 발전한 현대의 음식은 무엇 때문에 제사상에 못 올린다는 것인가?

전통이 현대에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 후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허례허식은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인의예지신과 같은 정신적 덕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는 영역까지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니까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다. 옛날의 제수(祭需·제사 음식)는 그 시대의 음식이었다. 조상들이 당시의 조리법으로 그 시대의 음식을 차려서 제사를 지냈듯이 우리는 평소에 우리가 즐기는 우리 시대의 음식으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속담에 제상도 산 사람 먹자고 차린다고 했다. 제사음식도 현대에 맞게 온고지신(溫故知新)해야 한다.

소설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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