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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베어져 버린 나무에 대한 애도곡'…김희선 개인전 '비가'

2022-09-28

갤러리 분도서 10월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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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비가(悲歌)'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선의 '비가(悲歌) Elegy'展은 인간에 의해 심하게 베어져 버린 나무에 대한 애도곡이자,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경고음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희선이 선보이는 신작의 모티브는 지난 겨울 작가의 집 마당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출발한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작가의 주택에는 호두나무, 비파나무, 무화과나무 등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다. 나무들에 반해 다 허물어져 가고 있었던 이 집의 소유주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나뭇가지들이 방해된다는 이웃집의 불평 때문에 전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지 작업이 이뤄질 때 이웃 분과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했던 것이 치명적인 실수가 돼 버렸다. 이웃 할아버지가 전지 작업을 일일이 간섭하는 바람에 전지 전문가와 약속된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나뭇가지들이 베어졌다. 일괄 삭발당해 버린 듯 잘려 있던 나무들을 보는 순간, 작가의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특히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건 호두나무로, 행여 고사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 우울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봄이 되자 나무들에서 새순이 조금씩 돋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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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연접'
작가는 잔인하리만큼 훼손된 나무에 대한 죄책감에, 인간의 시선으로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 베어졌던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슬픈 노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이번 전시 '비가(悲歌) Elegy'가 완성됐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금박이 입혀진 호두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고 있는 작품 '연접'이 눈에 띈다. 절단된 나뭇가지와 인간의 손이 함께 만나게 한 것으로 나무에 대한 미안함과 위로, 존중이 느껴진다. 손은 작가의 손을 직접 떠서 제작했으며, 나뭇가지에 황금색을 칠한 것은 작가가 나무에, 또 소중한 생명에 보내는 경의의 표현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3D 영상작품이 보인다. 약 5분 길이의 이 작품은 나무가 땅의 수액을 빨아들이고 대지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점점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북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북을 두드리는 실체는 바로 나뭇가지다. 금박을 입힌 큰 나뭇가지를 조각처럼 세운 작품을 둘러싸고 15개의 스네어 드럼이 모여있다. 금속 지지대에 놓인 이 작은 북들엔 각각 작가의 집 마당에서 가지치기로 잘려 나간 호두나무 가지들이 달려 있다. 그리고 관람자의 발걸음을 감지한 센서에 의해 나뭇가지들이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앞쪽 그룹의 북들은 느린 템포로, 뒤쪽 그룹의 북들은 빠른 템포로 소리를 낸다. 작품명은 '비가(悲歌)'. '만약 나무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이 작품에서 스네어 드럼이 울리는 소리는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음에 다름 아니다. 영화 '양철북'의 오스카가 치는 교란의 북소리처럼.

작가는 작가 노트에 "주택에서 시간의 겹이 쌓인 나무와 함께 호흡하고, 소소한 텃밭도 가꿨다. 자연을 조금씩 가까이 하다 보면 경이로운 순간들이 많다. 그리고 이 공간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서 "수도 셀 수 없는 많은 생명체들이 각각 그들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들의 시간은 각기 다른 선상에 있으며 인간 중심의 사고는 계속 어리석은 오류를 범한다"고 썼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 노트를 끝맺는다.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기울게 된 이 호두나무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사회, 정치적 관계, 문화적 속박, 인간 중심적 욕망으로 인류의 삶과 환경은 비틀어진다. (중략) 그러나 태양을 향해 살아나고자 하는 자연의 힘은 위대하며 무심히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트를 취득하고 쾰른 미디어아카데미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영남대 트랜스아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예술로 승화한다. 2005년 독일에서 귀국 후 몇 년간 우리 화단에서 선구적으로 뉴미디어아트 작품, 즉 최첨단 ICT를 접목한 인터엑티브 작업을 선보였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는 기계적인 인터액티브를 추구하기보다 감성의 영역에서 관람자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 전시는 10월8일까지.

글·사진=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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