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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고마운 세종대왕

2022-10-06

현대한국어 표기체계의 원형

동양 전통철학·언어학 융합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글자

세종대왕 창제한 '훈민정음'

겨레의 얼 담는 소중한 문자

[우리말과 한국문학] 고마운 세종대왕
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말은 민족의 삶을 이루는 바탕이고 우리 문자는 민족의 얼을 담는 그릇이다. 제576돌 한글날을 기념하여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고마워 한글'이라는 표어로 2022 한글 주간 행사를 열고 있다. 우리말을 가장 적절하게 담아낼 수 있는 한글에 고마워하는 행사이다. 그렇다면 왜 한글이 고마운 것일까?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학생들에게 한 번쯤 하는 질문이 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을까? 중국의 한자 아니면 일본처럼 한자를 활용한 표기를 만들어 사용했을 수도 있고, 아예 문자가 없는 국가에서처럼 로마자 알파벳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이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중국의 한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고대 시기에 한자를 빌려서 개발한 표기법이었던 이두나 향찰, 구결 표기법을 사용하거나 사대부들이 주로 사용하던 한문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선 우리말은 중국 한문과는 문법 형식이 다르다. 한문은 주어-서술어-목적어의 순서로 문장이 이루어지지만, 우리말은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순서로 되어 있다. 이두식 표기의 이른 예로 서기 612년에 조성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서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임신년유월십육일이인병서기)'라는 구절은 '임신년 6월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고 기록한다'로 해석되는데, 표기는 한문이지만 문법 구조가 우리의 문장 순서로 되어 있어서 중국식 한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한자는 뜻글자로 음(소리)과 훈(뜻)을 함께 표현하기 때문에 같은 단어도 2가지로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한자 음훈차 표기법인 향찰로 된 향가인 처용가(處容歌)의 구절을 보면 '東京明期月良/夜入伊遊行如可'를 향찰 표기법에 맞추어 읽으면 '동경발기달란/밤들이놀니다가'로 읽고, 뜻은 '동경 밝은 달에/ 밤 깊도록 놀며 다니다가'로 이해했을 것이다. 즉 소리와 뜻이 이원화되어 있어서 소통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한국어는 교착어이므로 조사나 어미 같은 문법 요소는 덧붙여야 하는데, 한자를 빌려 토를 적는 구결(口訣)이라는 표기법도 있었다.

한자를 빌려서 사용하면 어렵다는 사실은 일본어에서 알 수 있다. 한자를 활용한 일본어를 배울 때 부딪히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바로 한자를 읽는 법이 너무 다양하다는 점이다. 즉 초(草; 풀 초)를 음독하면 そう(소우)라고 하고, 훈독하면 くさ(쿠사)라고 한다. 만일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자를 이용한 복잡한 표기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도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고, 생각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고마움이 가슴에 와닿는다.

훈민정음은 말소리를 문자로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의 결실이다. 이 문자는 음양오행을 비롯하여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이 두루 조화되는 동양의 전통 철학을 담으면서도 언어학과 음악, 역학(易學)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융합해서 만든 아주 심오한 글자이다. 당시에 불린 '정음(正音)'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말을 정(正)히, 반드시 옳게 쓰는 글'이란 뜻으로 우리 말소리를 가장 바르게 적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10년경 주시경(周時經) 선생께서 '큰' 뜻의 '한'을 붙여 하나의 큰 글이라는 의미로 한글이라고 했다. 이 명칭도 세종께서 만드신 훈민정음을 '겨레의 큰 글'이라는 의미로 새기면서, 창제자의 애민 정신을 더 높이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겨레에게는 무척 고마운 일이다.
김덕호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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