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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외로운 사람들

2022-10-07

[금요광장] 외로운 사람들
이재동 (변호사)

은행에 맡겨 둔 정기예금이 만기가 되었다고 하여 근처 점포에 갔다. 다시 예치를 하려고 하니 종이 통장을 만드는 것보다 인터넷 모바일 뱅킹으로 하면 0.3%의 이율을 더 준다고 한다. IT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거부감이 있었으나 이율 차이도 크고 직원이 권하기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는데, 내 스마트 폰을 주고받으면서 뭘 깔고 또 깔고 계속 입력하고 수없이 '동의'를 누르고 인증번호를 몇 번이나 받아 넣고 그래도 막히는 경우에는 딴 직원을 부르고 하여 기존 계좌로 하면 십 분 만에 될 일을 거의 한 시간이나 고생했다.

거대 은행이 이렇게까지 모바일 뱅킹을 권유하는 것은 인력과 점포를 대폭 줄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임이 뻔히 보이지만, 나는 아마 만기에는 또 점포에 가서 직원에게 맡길 것이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인지 누구나 다 사용한다는 카카오 택시나 대리도 사용하지 않고 쿠팡이나 배민(배달의 민족)앱도 없어 책 이외에는 인터넷으로 구매하지도 않는다.

현대 IT산업의 발달은 사람이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할 필요를 크게 줄였고 이는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더 심해졌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도 경영 효율화와 이용자의 편의성 제고를 이유로 사람을 직접 만날 필요를 없애는 비대면 스마트 산업에 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찾는 존재이다. 비대면 사회는 편리할지는 모르지만 고립된 개인은 불행하다. 혼자 살며 집에서 혼자 일하고 배민에 음식을 시켜 먹방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밥을 먹고 결국 고독사하는 것은 멀지 않은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모습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라는 책에서, 21세기 외로움 위기의 이념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자유가 최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득세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였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가 아님에도, 신자유주의로 비롯된 경제 우선의 생각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었다고 말하였다.

고독은 사람의 신체를 질병에 취약하게 만들고 정신을 병들게 한다. 특히 비대면 사회의 외로운 사람들은 민주주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민주주의가 대화와 토론과 공동의 경험을 통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충돌하는 욕구들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고립된 인간들이 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의 등장을 분석하면서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나치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라는 것인데, 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선동적인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는 현상이 비대면 사회로 생긴 고립된 외로운 사람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개인적 자아를 투항함으로써' 존재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인들과 동네 주점에서 마시고, 가족들과 동네 식당에서 외식을 하며, 가게에서 직접 물건을 고르고, 모여서 운동을 한다. 씻고 챙겨 입고 나가는 일이 귀찮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만나 나누는 인사가 나와 마을을 살리고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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