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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디지털시대에 만나는 옛 그림 속 반려견들…'애틋한 모성애' 우리네와 똑같아…정겹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벗

2022-10-14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디지털시대에 만나는 옛 그림 속 반려견들…애틋한 모성애 우리네와 똑같아…정겹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벗
이암 '모견도'(종이에 채색, 73×42.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언니의 강아지 '돈'이 집에 왔다. 언니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내가 강아지의 '대리모'가 되었다. 언니의 품을 떠나는 순간부터 온몸을 떨던 강아지는 거실로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팔짝거리며 뛰어다녔다. 내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내가 책상에서 공부하면 발치에 와서 잠이 들었고, 소파에 앉으면 옆자리를 차지했다. 신문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가 성가셨다. 며칠 사이에 강아지의 시선이며 행동이 좋아졌다.

어미 품속에 파고든 새끼 세 마리 포착 '모견도'
나무 그늘 아래 평화로운 개가족 일상에 미소

사도세자가 꿈꾼 가족의 모습 '어미 개와 강아지'
어미의 대범한 몸짓·새끼의 날렵한 동작 묘사

눈보라 치는 겨울밤 풍경 담은 '풍설야귀인도'
행인의 인기척에 놀란 개, 사립문 앞에서 컹컹


◆사랑이 넘치는 어미 개와 강아지

'돈'처럼 귀엽고 예쁜 강아지는 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1507~1566)이 그린 '모견도(母犬圖)'에도 나온다. 이 '모견도'는 두 마리의 새끼가 어미 품속으로 파고들고, 다른 한 마리는 어미의 등에 올라탄 모습이 평화로운 작품이다. 예로부터 개는 인간과 오래도록 함께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사냥에서 동물을 쫓는 길잡이를 하고 집을 지키는 경비 역할도 했다. 마당을 지키던 개는 급기야 거실로 들어와 가족이 되었다. 서열 1, 2위가 될 정도로 신분 상승도 했다. 반려견으로 호사를 누린다.

개는 신라 시대 토기에 등장하면서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암을 시작으로 많은 화가가 개를 그렸다. 이암은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두성령'을 제수받은 문인화가다. 왕실의 후원을 받은 그는 동물과 곤충, 새, 꽃 그림으로 조선 시대 초기 화풍을 정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동물화는 친근하고 동화적이다. 왕족 출신답게 온화한 그림을 선보였다.

'모견도'는 잎이 풍성한 나무 그늘에 어미는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흰둥이와 검둥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미의 품속에 안겼다. 등에 올라탄 회색 강아지는 눈을 감고 어미의 체온을 느낀다. 어미와 새끼들이 숨결을 나누는 행복한 순간이다. 새끼들을 품은 어미의 시선은 지긋하다. 붉은 목줄에 금색 방울이 달린 어미의 얼굴이 준수하다. 강아지들은 천진스럽다. 이파리와 나무 둥치는 붓에 먹을 묻혀 대담하게 그렸다. 어미와 강아지는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각각의 표정을 살렸다. 강아지는 바라만 봐도 귀엽다. 인간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원초적인 매력이 있다. '모견도'는 사랑이 넘치는 개 가족의 일상이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디지털시대에 만나는 옛 그림 속 반려견들…애틋한 모성애 우리네와 똑같아…정겹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벗
최북 '풍설야귀인도'(종이에 연한 색, 66.3×42.9㎝, 개인소장)
◆끈끈한 가족애로 하나가 된 사도세자의 개

이암의 '모견도'가 가족의 따듯함을 담았다면,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가 그린 '어미 개와 강아지'는 색다른 가족애를 보여준다. 자유분방한 필치로 표현된 활기찬 그림이다. 어미를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오는 강아지들에 초점을 두었다. 사도세자가 꿈꾼 그만의 건강한 가족을 그렸다.

사도세자는 정조(正祖·1752~1800)의 아버지로 총명하고 다재다능했다. 땡볕이 내리쬐던 여름, 뒤주 속에 갇혀 이십칠 세의 일기로 일생을 마친 가슴 아픈 인물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했다. 용주사를 건립하여 명복을 빌었다. 부모의 은혜가 담긴 '부모은중경'을 새로 편집하여 반포했다. 사도세자의 '어미 개와 강아지'는 자식과 아비의 정이 흠뻑 밴 작품이다.

'어미 개와 강아지'는 끈끈한 모성애로 가득하다. 커다란 몸체의 어미 개가 듬직하게 앉아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어미의 마음이다. 검은 점무늬가 얼룩덜룩하게 박힌 어미는 새끼들을 기다린다. 어미를 닮은 점박이와 흰둥이는 장난치고 놀다가 어미 개를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온다. 어미는 고개를 돌려 새끼들을 본다. 어미의 몸체를 대범하게 특징을 포착하여 그렸다. 거친 필력으로 꼬리를 마무리했다. 새끼의 날렵한 동작은 생동감이 넘친다. 개의 특징을 잘 표현한 필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수많은 관찰과 노력의 대가다. 사도세자의 따듯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긁기에 진심인, 개의 눈빛과 포즈

한 마리의 개가 우스꽝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가려운 곳을 긁는 중이다.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1696~1763)의 작품 '흑구소고(黑狗搔股)'다. 휴식을 취하는 개의 표정이 한가하다. 개를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하여 화가의 기량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개의 뼈대를 탄탄하게 스케치한 후 서양화풍으로 그렸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디지털시대에 만나는 옛 그림 속 반려견들…애틋한 모성애 우리네와 똑같아…정겹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벗
사도세자 '어미 개와 강아지'(종이에 연한 색, 37.9×62.2㎝,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김두량은 친가와 외가 모두 이름이 높은 화원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가 도화서 화원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에게 그림을 배웠고, 특히 개를 잘 그렸다. 영조가 그에게 '남리'라는 호를 내릴 만큼 그림 재능을 인정받았다. 영조가 직접 김두량의 작품에 제발(題跋)을 써준 '삽살개'가 전한다. 왕과 신하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잎을 떨군 가지에는 겨울이 지나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봄의 정취가 풍긴다. 따사로운 햇살의 조명 아래 개가 뒹굴듯이 비스듬히 앉았다. 뒷다리로 옆구리를 연신 긁는 중이다. 시원한 느낌에 몰입된 눈빛은 반쯤 감겼다. 정적이 흐르는 한낮, 개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뼈대를 살려 짙은 먹으로 털을 자세하게 그렸다. 연한 먹으로는 마른 풀잎을 휘날리게 그렸다. 나무와 마른 풀은 푹신한 개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개와 나뭇가지와 마른 풀은 대담하게 느낌만 살려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뛰어난 사생력이 돋보이는 참신한 작품이다.

◆깊은 산골을 울리는, 개 짖는 소리

눈 천지다. 어둑어둑 해는 지고 선비와 시동이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사립문 앞에 낯선 이들이 지나가자 검은 개가 사납게 짖는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어질 것만 같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의 작품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에 나오는 풍경이다. 소복이 쌓인 눈이 사방을 뒤덮었다. 행인의 발걸음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바람 사이로 피어난다.

최북은 술을 좋아하여 숱한 기행을 남긴 직업화가다. 아침에 그림을 팔아서 아침밥을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림을 팔러 평양에서 동래까지 두루 돌아다닌 것만 봐도 그의 고달픈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성격이 괴팍하여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 가난했지만 품위를 지키는 화가였다. 중인 출신으로, 시서화에 능하여 당대 잘 나가는 문인들과 어깨를 맞대며 교류했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디지털시대에 만나는 옛 그림 속 반려견들…애틋한 모성애 우리네와 똑같아…정겹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벗
김남희 화가
'풍설야귀인도'는 그의 기질을 드러낸 강한 필치와 거침없는 필법으로 묘사했다. 둥근 창에 커튼이 쳐져 있는 집이 흰 눈을 이고 있다. 짙고 옅은 나무를 다양하게 표현하여 변화를 주었다. 나무는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사립문 앞에 개가 짖고 있다. 방한모를 눌러쓴 선비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간다. 그 옆에 시자가 뒤따른다. 개울물이 조르륵 흐르고 눈이 내린 그 자리에 얼음이 얼었다. 깊은 골짜기를 연상시키는 산봉우리가 멀리 있다. 하늘은 어둡다.

'풍설야귀인도'는 눈이 내린 산과 나무, 인물이 주인공이다. 자세히 보아야 나무 사이에 있는 개를 발견한다. 화가는 왜 개를 그렸을까. 눈이 내린 풍경에 인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를 그린 것만 같다. 집주인이 방안에서 인기척을 느끼자 개가 먼저 나왔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 집을 방문한 손님인지 개가 확인하는 중이다.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개의 본성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반려견, 아낌없이 베푸는 절친이자 가족

반려동물은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외로움을 달래주고 친구처럼 온기를 나눈다. 산책도 함께하고 눈빛을 주고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은 이들에게 살갑게 다가가 재롱을 부린다.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진다. 감성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

여행에서 돌아온 언니가 강아지를 데리러 왔다. 강아지를 안고 바깥으로 나가니 또 떨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언니가 양팔을 벌려 웃으며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 언니의 품에 안기자 눈이 평온해진다. 언니에게 꼭 붙어서 차를 타고 떠났다.

강아지와 열흘간 동거는 끝이 났다. 이제 난 자유다. 홀가분한 마음도 잠시.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강아지가 없으니 뭔가 허전했다. 그날 저녁,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강아지가 현관문 앞에서 너를 기다린다"라고.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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