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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화가 |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의 사진이 예술 사진의 시초로 평가받는 이유는 객관적 고증의 발전인 사진의 계보를 거스른 역행, 순수 예술과 기록의 기능적 측면 등을 넘나든 작업 방식에 있다. 사진의 암흑기, 독립적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지 못한 시기의 작품이지만 오히려 그는 당시의 초상화가들로부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참조용으로서 인물 사진 의뢰를 더 많이 받았다고 하니 진보된 기술을 통해 장르 간 구분을 타파한 급진적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카메라 발명 이전 시대의 역사화나 귀족의 초상화에 나타난 화면 구성과 연출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는 사진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에 대한 선구자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디지털 기술로 이미지를 조합하고 재배치하는 오늘날의 사진가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차이점이란 그가 디지털 장비 대신 판유리의 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하고 인쇄나 노출의 정도를 고려해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른 번이 넘는 인화를 거쳐 만든 작품, '두 가지 삶의 방식들(Two Ways of Life)'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들은 레일랜더가 사용했던 초기 포토샵 기술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화면 속 천을 두른 채 남성들과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반라의 여인들이 창녀들이며 한 자리에서 그의 연출대로 찍은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사실은 한 사람씩 레일랜더의 스튜디오에서 각기 찍어 합성한 사진이며 빅토리아 시대적 배경을 갖는다는 것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레일랜더는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이 예술'이라 믿었다. 매체의 성격보다는 예술가의 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고 말이다. 초상화가들에게 기술적 도움을 주고 자신의 기술로 전통적 초상화를 구현해내는 역행은 예술이 기술이나 형식을 뛰어넘어 어느 시대에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떠돌이 아이들, 외면당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담는 등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기 전까지 당시로서는 드문 한 사람의 예술 사진가로 기억되었다.
과거의 산물이 더 이상 죽지 않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레일랜더와 같은 작가정신이 더욱 요구된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초상 사진, 순수 회화를 재정립한 그의 작품은 진정한 실험 정신에 관한 것이다.
김윤경 (화가)

김윤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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