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좁은 길 가리키는 '골목'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공유
대구의 피맛골로 불린 진골목
옛 삶의 기억과 흔적 새겨진
근대문화 간직한 특별한 장소
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개발' 논리에 묻혀 잊힌 작은 골목들. 그 골목을 다시 보자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사설에서는 골목에 사람의 목, 손목, 발목처럼 삶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라는 의미마저 부여했다. 우리는 어떤 골목을 지나왔을까? 내가 발 디딘 우리 동네에는 어떤 골목이 있었을까?
옛 한글 문헌에서 '골목'보다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길'이다. 15세기 문헌인 석보상절(1447년)에 나타나는 "천도(天道)는 하늘에 가 나는 길, 인도(人道)는 사람 되어 오는 길이라"의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담긴 길이다. 그래서 '길'과 같은 뜻을 가진 '골목'에도 '삶'의 뜻이 함께하게 된 듯하다.
'골목'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가리킬 때만 쓴다. 골목도 누군가의 걸음걸음이 모여 생긴 것이지만, 미처 넓어지지 못한 길이다. 이렇게 생긴 골목들 중 의미가 담긴 골목이 있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다. 이 '피맛골'은 말을 피해 다니는 길이라 하여 '避馬(피마)+골'이다. 조선시대에 높은 벼슬에 있는 관리가 서울 종로의 큰길을 오갈 때 신분이 낮은 이들은 이 길에서 이들의 행차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고 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 다니던 좁은 옆길이 지금의 '피맛골'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도 그 좁은 길에 성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맛집 골목이 되어 새로운 삶이 새겨지고 있다.
서울에 피맛골이 있다면 대구에는 진골목이 있다. 대구에는 '진골목'이 피맛길이었다. 진골목의 '진'은 '진짜'의 '진'이 아니라 '길다'의 '긴'이 구개음화 된 '진'에서 왔다. 옛날 대구 양반들이 영남 제일관에서 종로의 큰길을 따라 감영으로 갈 때, 이들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이들을 피하기 위해 큰길 옆 좁은 길로 다니던 길이 지금의 진골목이 되었다. 지금은 대구 골목 여행길 중 '근대 문화 골목'의 여행길이 되어 새로운 삶을 얻었다.
골목이라 해서 좁고 어둡지만은 않았다. 1765년에 홍대용이 쓴 '을병연행록'이란 사행 일기 속 청나라의 골목은 저잣길보다 화려하다. "남편으로 조그만 골목이 있어 우리나라 행랑 뒷골 같거늘 그리 들어가니 길이 심히 좁아 두어 간 너비로되 좌우에 아로새긴 창호와 기이한 채색에 눈을 뜨지 못할 듯하고 온갖 물화를 총총히 벌였으니 (중략) 그 사치한 거동이 문 안 저자에 비하면 또한 십 배나 더하더라." 좁은 골목에서 서로 흥정하는 사람들과 화려한 색감의 물건들, 풍기는 음식 냄새들을 생각하니 절로 활기가 느껴진다.
홍대용은 '을병연행록'에서 청나라에서 본 골목들을 조그만 골목, 그윽한 골목, 깊은 골목, 작은 골목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자료로는 18세기에 와서야 '골목'이 나타나지만, 홍대용이 쓴 세련된 골목 표현들로 볼 때, '골목'은 이전부터 일상생활에서 깊이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 친구를 목청 터지게 부르던 골목의 주택가가 생각난다. 좁은 길이니 길에서 불러도 서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함께하는 삶의 길이 골목인 셈이다. 골목에는 그곳 사람들의 삶이 시간과 함께 새겨져 있다. 근대의 흔적을 간직한, 대구 진골목의 '정소아과' 간판처럼 말이다. 진골목의 유래는 '긴 골목'의 방언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골목이 '진짜 골목'에서 온 말인 줄 아는 젊은이가 많다. 골목이 시간이 흐르면 진짜가 된다. 누군가의 걸음걸음이 지난 골목은 그 길을 밟은 이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 번도 다녀보지 못했던 골목에서 옛 삶의 흔적을 찾아보면 어떨까?
안미애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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