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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우광훈의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훈장 단다고 명성 쌓이는 건 아니라던
조언 떠올라 신춘문예 詩 당선에 우울
이후 또 저버린 채 청소년문학상 '훈장'
불가항력적인 게 날 시궁창 같은 곳으로
2010년 12월, 난 엉뚱하게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분에 당선되었다.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시상식이 끝나기 전까지 매일 우울했던 것 같다. 난 여전히 시인이 아니었고, 시란 것은 나란 인간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그런 연유로 난 '2011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에 내 당선작의 게재를 정중히 거절하였고, 이후 시란 것으로부터 가능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당선 소식을 접하던 날 밤, 장정일 형의 조언이 맨 먼저 떠올랐다.
『훈장 더럭더럭 달아놓는다고 명성이 쌓이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안다.
하지만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것들이 있다.(이후, 난 형의 조언을 재차 저버린 채 청소년문학상이란 훈장을 하나 더 달게 된다. 구제불능이다.) 그 불가항력적인 것들이 매번 날 시궁창 같은 곳으로 이끈다. 그래서 나란 인간은 늙으면 늙을수록 점점 더 추해지는 걸까?
난 당선소감란에 이렇게 썼다.
『저는 분명히 미쳤어요. 미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요. 엘리스는 왜 거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3년 전, 한 무명 소설가는 소설이란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쉽게 말해 코커스 경주에서 그 흔한 골무조차 받지 못했던 거죠. 이후, 그는 하루 종일 깜깜한 토끼굴 속을 헤매며 책만 읽었습니다. 재미있고 기이한 이야기만이 시간을 세워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가는 문득 시(詩)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시가 나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래된 동경과 해묵은 오해 때문이었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오로지 시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조언과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곧장 하트여왕이 있는 성으로 3편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우체국에 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 시의 목을 베어라! 저 시의 목을 베어라!"
3주 뒤,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물고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울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처구니없음에 한동안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그날 밤, 그는 밀려드는 두려움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습니다. 툭 튀어나온 자신의 이가 한없이 부끄러웠으니까요. 존경하는 장토끼 형의 충고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 나는 드디어 파멸해 버린 것일까요? 그렇게 뒤척이다, 스르르 잠들어 버렸습니다. 입가엔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소설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눈을 뜨면, 세상은 온통 지루한 일상과 무관심으로 바뀌어있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험프티 덤프티를 만나려면 도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하는 거죠? 시냇물인가요? 아니면 양의 가게인가요?』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난 형의 빛나는 시(詩)들로 인해 문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정·일』
이 세 음절의 고유명사가 내 문학의 모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분과 몇 년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대구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 좁은 도시의 그 경쟁력 없음에 난 매번 감사했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운 소설가가, 아니 시인이, 이 대구에, 아니 형의 곁에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형이 KBS1에서 방영된 <TV, 책을 말하다>의 방송진행 관계로 대구와 서울을 오갈 때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동덕여대 초빙교수로 임용되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자 형과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물론, 그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형은 언제나 따스한 사람이었다. 먼저 연락하는 것에 인색한 나를 매번 불러내어 지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부족한 내 삶과 글에 애정 어린 조언을 잊지 않으셨던 분……. 그래서 형의 부재가 나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형이 정말 보고 싶은 하루다.

우광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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