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튬 가격 종류별 천차만별…비싸게는 15만원씩 책정되기도
학원 강사들 "학생들 패션 경쟁 부추기고 위화감 조성" 지적
부모들 "상업주의 결합된 외래문화 즐기려다 과도한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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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다양한 코스튬을 입고 핼러윈데이를 즐기고 있다. 영남일보DB |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대구 수성구의 김모(여·42)씨는 지난달 해외직구를 통해 딸의 핼러윈 코스튬을 구입했다. 김씨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학원은 의례적으로 10월 말이되면 핼러윈 파티를 연다"며 "다른 친구들은 모두 꾸미고 오는데, 우리 아이만 그냥 보낼 순 없어 4만원 정도 주고 해리포터 망토를 구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옷만이 아니다. 머리띠 같은 소품이나 '반짝이' 분장까지도 하고 싶어 하고, 캔디 선물도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핼러윈이 이처럼 아이들 문화 깊숙이 침투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이태원 참사의 배경이 된 '핼러윈 데이' 문화가 학부모들에게는 신(新) '등골브레이커'로 작용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 전통 축제 '사윈'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 사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 제의를 올렸고, 망령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런 핼러윈은 한국에 2000년대 초반 국내 영어유치원이 확산 되면서 함께 유입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내 전국으로 퍼졌다. 대구에서도 매년 이맘때면 핼러윈 장식을 한 학원가, 유치원은 물론 핼러윈 맞춤 복장 등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핼러윈이 상업주의와 결탁한 변질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부 유치원 등에선 핼러윈의 기원을 설명하는 등의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어린이들은 이날을 단순히 '코스튬을 예쁘게 차려입고 사탕을 주고 받는 날'로 인식하는 형편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핼러윈은 이미 '또래 문화'가 됐다. 이모(45·대구 북구)씨는 "최근 아홉 살 딸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끼리 핼러윈 파티를 하겠다며 의상을 사달라고 했다"며 "참사가 일어난 뒤 결국 없던 일로 됐지만, 자기들끼리 파티를 따로 즐기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주류 문화가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수성구 범어동의 한 학원 강사 A씨는 "아이들은 이맘때가 되면 당연히 핼러윈 파티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어나 예체능 과목까지도 모두 핼러윈 파티나 수업을 하는 통에 '왜 수학학원에선 선물도 주지 않고 파티도 열어주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다"라고 했다.
자연스레 '우리 아이만 뒤처질 수 없는' 부모들의 부담은 커진다. 이태원 참사 이후인 지난 1일 취재진이 김씨가 구매했다는 해리포터 핼러윈 코스튬 가격을 검색한 결과, 종류별로 천차만별이었다. 저렴하게는 1~2만 원대로 구입할 수도 있었지만, 비싸게는 15만원씩 가격이 책정되기도 했다. 머리띠, 넥타이, 목도리, 모자, 지팡이 등 소품도 다양했다.
여러 학원 강사들은 핼러윈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A씨는 "10월 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옷 장만 할 생각에 분주해지기 시작한다"며 "이 시기 학원에는 종류별 공주 드레스부터 '캡틴 아메리카' 같은 히어로 의상 등 별의별 패션이 등장하는데, 어머니들 사이에서도 경쟁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가르치는 강사 B씨도 "다들 핼러윈스러운데 혼자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분위기다"며 "위화감이 조성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유아 한 명이 쓰고 온 왕관을 보고, 다른 친구가 '이거 생활용품점에서 파는 거다'며 놀리는 일이 있었다. 간신히 주의를 돌리긴 했지만 진땀을 뺐다"고 했다.
정체불명의 문화가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도 있다.
학부모 김모(여·45·대구 동구)씨는 "대부분 핼러윈이 무슨 날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뻔히 보이는 얄팍한 상술에 이용당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 또 다른 나라 명절에 이렇게까지 열광해야 하나 싶다"며 "이런 변종 문화가 퍼져나간 것이 이번 참사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것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한두 번 입고 못 입을 의상 구입에 과한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문화가 과열되지만 않는다면 건전한 분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모(여·40·대구 수성구)씨는 "학원에서 해주는 핼러윈 이벤트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며 "요즘은 생활용품점에서 파는 저가 코스튬의 질이 아주 좋아서 5천원이면 만족할 정도의 장착이 가능하다. 그 정도 입혀 보내고, 하루만큼은 재밌게 놀고 오라는 생각이 크다"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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