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윤선갤러리에서 13일까지
![[ZOOM IN 전시&아티스트] 온통 핑크인데 핑크는 없다? 김진 개인전](https://www.yeongnam.com/mnt/file/202211/2022110601000175600007351.jpg) |
김진 '핑크는 없다' |
![[ZOOM IN 전시&아티스트] 온통 핑크인데 핑크는 없다? 김진 개인전](https://www.yeongnam.com/mnt/file/202211/2022110601000175600007353.jpg) |
김진 '핑크는 없다' |
![[ZOOM IN 전시&아티스트] 온통 핑크인데 핑크는 없다? 김진 개인전](https://www.yeongnam.com/mnt/file/202211/2022110601000175600007352.jpg) |
김진. <박주희 기자> |
갤러리에 들어서서 바라본 김진의 작품은 핑크로 가득한, 힘 있는 붓 터치가 돋보이는 추상 정물화를 연상시켰다. 고기, 바나나, 포도, 케이크 등을 떠올리게 하는 정물이 블링블링 반짝이며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작품은 온통 핑크 덩어리로 무장돼 있는데, 작품명은 역설적이게도 '핑크는 없다'이다. 작가는 "'핑크는 없다'는 제목을 단 것은 '핑크 천지인데 왜?'라는 의문을 품고 물어보라고 그렇게 이름 지었다. 최소한 이 작업에 대해서 설명할 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답했다.
김진의 개인전 '아르스 모르엔디(Ars Moriendi, 죽음을 위한 예술)'展이 수성못 인근에 위치한 윤선갤러리에서 1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11년부터 10여 년 동안 지속해 온 '빛'을 주제로 한 정물 작업인 '핑크는 없다' 시리즈의 초기작과 신작을 함께 선보인다.
작가에게 핑크는 가짜 웃음과 같은 허위적인 색이다. 김진 회화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분홍빛 덩어리는, 오로지 빛만이 존재하며 그림자는 사라진 가상의 세계이다. 발광하듯이 반짝이는 과일,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살, 우리를 유혹으로 이끄는 핑크빛은 모든 것이 상품으로 '전환'되고 '대체'돼 소비를 부추기는 이 시대의 정물이다. 과감한 붓질은 김진 작업의 특징으로, 붓질을 밀어 빛의 물리력을 강조했다.
혹자들은 "풍선 같아" "그림이 이렇게 예뻐졌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핑크는 없다' 시리즈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놓인 사물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로 빛의 양가성에 초점을 둔다.
작가는 빛도 폭력의 한 양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빛이 있어서 우리는 사물을 식별할 수 있지만, 일정 수준의 광량을 초과한 빛은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어 도리어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빛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 있었어요. 2008년 광화문에서 열린 광우병 시위에서 진압용 조명을 쏘는데 우리는 그 쪽을 볼 수가 없었던 반면 조명을 쏜 쪽에서는 우리를 보더라고요."
작가는 빛의 이면, 빛에 가려 보지 못하는 그림자와 상처에 대해 정물을 통해 조명하고 꼬집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표현하는데 왜 정물을 택한 것일까.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백화점 식품 코너의 고기와 과일이잖아요."
작가는 "광택제와 조명으로 발광하는 듯한 과일은 실제보다 더 풍만해 보이고, 부위별로 포장된 고기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살(肉)'이 됐다. 흠집 나고 고통받는 살이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반짝이는 것들의 매혹과 살의 관능이 대신한다. 나는 그러한 '전환의 결과'와 '대체'를 그려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우리 앞에 놓여진 과일, 고기, 야채들이 어떻게 피 흘리고 고통받는 살을 밀어내고 핑크빛으로 위장하는지를, 어떻게 빛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지를, 핑크빛 붓질로 우리의 세태를 구조화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묻고 있다. '과연 핑크는 있는가'라고.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존재할 때, 전체성은 상실된다"면서 "김진은 사물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거시적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편협한 삶의 기술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김진은 서울여대 서양화과(현 현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세르지 국립고등예술학교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으며, 2019년 제5회 전혁림미술상을 수상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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