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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명필이야기] 고산 황기로(하) 사선의 기다란 삐침·좌우 파동세 이루는 획…조선 중기 개성적 초서풍 전형 이뤄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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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로 글씨 '초서가행'이 새겨진 원석 중 하나.

독자적인 서풍을 이룩한 황기로의 초서는 낙동강 강변에 매학정을 짓고 자유롭게 살다 간 처사적 풍모와 함께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의 찬미 대상이 되었다. 황기로는 초서로 조선 중기 이후 서예계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많은 추종자를 낳게 되었다. 16세기에 황기로의 초서풍을 따른 대표적 서예가는 이우(李瑀)와 이산해(李山海) 등이다. 안동의 서예가로는 오운(吳澐)과 서익(徐益)이 꼽힌다.

그에 대한 역대 평가를 보면,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부정적인 평가도 동시에 존재한다. 글씨에서 드러나는 굳센 필획과 정신의 운용 또는 거침없이 흐르는 운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옥동 이서나 원교 이광사 등의 서예가들에게는 이단이라는 등 혹평을 받기도 했다.

'초성(草聖)'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황기로의 초서는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완상의 대상이 되었으며, 일찍부터 모각(模刻)되어 세간에 널리 유포되었다. 1549년에 모각·간행된 '초서가행(草書歌行)'은 현재까지도 적지 않게 전하고 있다.

'초서가행'은 돌에 새긴 석각본으로, 일찍부터 그 탁본이 널리 유포되었다. 현재까지도 다수의 이본 필첩이 전한다. 그리고 그 원석(原石)이 보존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초서가행'은 당나라 시인 이백이 초서 대가였던 회소(懷素)의 글씨를 찬미한 내용을 담은 시를 쓴 것이다. 마치 회소의 광초(狂草)를 염두에 두고 쓴 듯 분방한 운필이 돋보인다. 길게 삐쳐 올라가는 획과 좌우로 파동세를 이루는 획들이 곳곳에 보여, 황기로가 명나라 장필(張弼)의 서풍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대자로 쓴 서축(書軸) '초서 이군옥시(草書 李群玉詩)'는 회소 초서풍의 수용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시인 이군옥의 오언율시를 쓴 작품이다. 가느다란 필선과 경쾌한 붓놀림 그리고 유려하게 이어지는 원세(圓勢)의 운필은 마치 회소의 '자서첩(自敍帖)'을 방불케 한다.

초서 차운시 작품인 '경차(敬次)'는 회소와 장필의 특징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한편 특유의 독자적인 초서풍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황기로가 당대 문장가 5인의 시가 쓰인 시축을 감상한 후 손수 차운하여 쓴 자작시를 쓴 것이다. 칠언절구 네 수가 실려 있다. 사선의 기다란 삐침, 좌우로 파동세를 이루는 획, 글자의 대소, 획의 비수(肥瘦)를 강조한 점 등 장필의 영향을 받은 획법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까칠한 삽필(澁筆)을 많이 구사한 장필에 비해 명정(明淨)하고 윤기 있는 선질이 돋보이고, 장필 초서의 특징인 파동세와 사선의 과장된 획들이 보다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황기로의 해서와 행서는 전하는 작품이 매우 드물다. 해서와 행서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은 비갈에 쓰인 글씨다. 경남 진주 소재의 '조윤손묘비명(曺潤孫墓碑銘)', 충주 국망산에 있는 '이번신도비(李蕃神道碑)', 경남 합천에 있는 '이영공유애비(李令公遺愛碑)'가 그것이다. 대체로 왕희지의 자형을 따르는 한편 송설체의 특징이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송설체와 왕희지체가 혼합된 양상을 보이며 토착화 현상을 보였던 16세기 당시의 시대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황기로는 장욱·회소로부터 시작된 광초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이들 서풍을 융합하여 조선의 미감에 맞는 초서풍으로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 조선 중기의 서예사에서 기존 초서와는 구별되는 개성적 초서풍의 한 전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서예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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