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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추(桐楸) 금요단상] 문경 돌고개 성황당에서, 공공의 안녕 기원…현대판 '성황당 정신'을 바라다

2022-12-02

마을 풍년·평안 비는 선조들의 정성
돈·물질 좇는 정신, 인간과 자연 지배
돕고 사는 순박한 기운 다시 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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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마성면 고모산 고갯길 옆에 있는 성황당 풍경.

지난 9월 경북 문경 마성면에 있는 고모산성에 올랐다가 내려오다 고모산 산등성에 있는 성황당(城隍堂)을 가보았다. 고갯길 옆에 자리하고 있는 단칸 기와집인 성황당의 앞과 뒤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고, 성황당 주위에는 크고 작은 돌탑들이 많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낭당으로도 불리던 성황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였는데, 미신이라는 이유로 수많았던 성황당은 대부분 사라지고 잊혀갔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은 이곳에서 자신과 가족을 비롯해 마을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이 횡행하지 못하게 해주기를 빌었다.

이 고모산성 돌고개(石峴) 성황당은 20여 년 전에 중수한 건물인데, 중수 당시 1796년에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경상도 문경의 지정학적 위치, 영남대로를 지나는 나그네의 안녕과 마을의 풍년·평안을 비는 내용, 성황당을 지을 때 참여한 주민 30여 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이 성황당을 보면서 다시 '성황당 시대'의 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나라는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정신적 풍요의 측면에서는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후진하고 있는 측면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돈과 물질을 추구하는 마음 성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다양한 문명 이기와 돈의 노예가 되어가면서 마음은 오히려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모든 면에서 여유를 잃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보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사회의 건강을 빌며 지키고자 하는 개개인의 마음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도 그렇고, 참사 이후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한심한 관련 언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 문제만이 아니다. 지구촌이 마주하는 총체적 위기 상황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걱정이다. 지금 이대로 그냥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가면 자본과 과학기술을 장악한 '나쁜 기운'이 인간과 자연을 지배,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세계적 지성의 경고도 이어지고 있다. 그냥 흘려듣기만 해도 될 것인가. 문득 아래 시조가 떠오른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임을 언제 속였기에/ 월침삼경(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성리학 대학자 화담 서경덕의 제자로, 서경덕을 사모했던 기생 황진이의 시조다. 다음은 서경덕이 이 시조에 화답해 지었다고 하는 시조다.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느 임 오리마난/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그인가 하노라'

'어리다'는 '어리석다'라는 의미다. 이런 '어린 마음'이 소중하지 않을까.

황진이가 서경덕에게 글을 배우러 가던 길가에도 성황당이 있었을 것이고, 황진이와 서경덕도 성황당에서 서로의 행복을 빌고, 사회의 안녕을 간절히 기원하곤 했을 것이다.

순박한 마음을 되살리지 못하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편리하기 그지없는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더라고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순박한 기운이 모이는 성황당이 곳곳에 다시 생겨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 사회의 변화는 결국 개개인의 변화로 시작된다. 각자 마음속에서라도 성황당을 하나씩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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