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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우리 몸짓은 '마임+춤'…추상과 묘사의 결합체

2022-12-09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우리 몸짓은 마임+춤…추상과 묘사의 결합체
석포제련소에서 비명에 간 산업노동자를 위한 진혼무를 추는 필자. 〈사진작가 이기형씨 제공〉

◆춤은 기운으로 춘다

춤은 모양으로 추는 것도, 근육으로 추는 것도 아니다. 춤은 기운으로 춘다. 그러니 기운을 쓸 줄 알면, 춤은 저절로 추게 된다. 춤을 가르친다 하면, 대뜸 무슨 춤이냐고 묻는다.

"살사예요, 한국무용인가요?"

그냥 춤이다. 아니 모든 춤이다. 춤은 흥이 나면 꿈틀대며 나오는 몸짓이다. 우리말로는 '보릿대춤'이고, 요즘 말로는 '커뮤니티 댄스(Community Dance)'다. 모양을 정하고 발을 맞추는 건 그다음의 일이다.

시작은 어깨 위로 팔을 올리는 것이다. 아니, 팔이 올라가는 것이다. 용을 쓰면 팔이 절로 올라간다. 아니, 몸 전체가 떠오른다. 이것이 시작이다. 애를 쓰면 무릎을 굽히고 펴며 덩실거리고, 이리저리 발을 뗀다. 기를 쓰면 모양을 만들고, 장단을 타며 논다. 기운을 쓰는 원리는 지난 세 번째 연재 '애쓰고 용쓰고 기를 쓴다'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세 가지 기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을 쓰는 것인데, 용은 몸을 위로 뜨게 하는 부력이며 동시에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 곧 마음이다. 자신은 몸치라 하면서 춤판에 끼어드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용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춤이 뭐길래?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는 마당에 춤이라는 예쁘고 좋은 말을 두고 굳이 무용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김에 나름대로 춤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다음은 페이스북에 연재하고 있는 '몸짓에 대한 상상력 사전' 가운데 춤에 대한 항목이다.


'춤'은 '추켜올리다'에서 파생된 말
중단전에 기운을 모아서 쓰는 몸짓

서로의 개별성 존중하는 난장문화
동 트듯 흥이 자연스럽게 올라야 가능
월드컵 응원 붉은악마도 난장에 속해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우리 몸짓은 마임+춤…추상과 묘사의 결합체
춤은 기운으로 춘다. 그러니 기운을 쓸 줄 알면, 춤은 저절로 추게 된다. '작두'란 공연에 몰입한 필자.


◆조성진의 몸짓사전

몸을 추켜올리는 기운으로 솟아오르는 흥을 표출하는 행위. 몸 안의 박동과 떨림이 몸의 심미적인 감각을 거쳐 밖으로 드러나는 움직임. 바깥의 기운과 소통하기 위해 한동안 지속하는 비언어적인 몸짓.

△풀이=춤은 '추켜올리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몸을 추켜올린다는 것은 우리말로는 용을 쓴다는 것이고 중단전에 기운을 모아서 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몸에 부력이 생기면 팔과 다리가 가벼워져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고, 높낮이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당연히 용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춤을 출 수가 없다. 역으로 용을 쓰기만 해도 춤은 시작된다.

△춤의 어원=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떻게 하면 춤을 출 수 있는가'를 가늠하도록 해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호흡을 보는 사람은 '숨'에서 나왔다 하고, 생명의 발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움이 튼다'에서 근원을 찾는다. 나름 의미 있는 접근이지만, '춤춘다'를 다른 뜻으로는 '들떠 행동하다'와 같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상승하는 기운 즉 추켜올림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한자어 무용(舞踊)에서 무(舞)는 '뛰어다니다' 혹은 '날아다니다'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용(踊)은 '뛰다' 혹은 '오르다'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으니, 추켜올림이라는 해석이 보다 본뜻에 가까워 보인다. 참고로 우리말이 지니고 있는 특징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ㅊ으로 시작하는 말은 '추임새·추녀·추스르다'처럼 '들어 올림'의 의미를 갖는 것이 많다. 그리고 ㅈ으로 시작하는 말은 '죽는다·잔다·작다·졸졸졸'처럼 '하강·수축'의 의미를 갖는 것이 많다.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우리 몸짓은 마임+춤…추상과 묘사의 결합체
2021 온라인 예술 페스티벌 '무' 참가작 작두. 〈영상작가 주형돈씨 제공〉

◆춤과 기운

용쓴다=숨을 들이마시며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들어 올려 몸 안에 솟는 기운을 만든다. 숨을 내뱉거나 머금으며 가슴(중단전)에 모인 기운(용)을 팔다리로 보내 일정한 모양(사위)을 만든다. 볼룸댄스나 플라멩코의 자세를 보라.

애쓴다=배꼽 아래(하단전)에 모인 기운(애)은 팔다리를 굽히고 펴는 동작(굴신, wave)이나 이동을 맡는다. 서양춤은 워킹에 주로 골반을 쓴다. 승무의 대가였던 이매방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것들은 배꼽 아래에서 춤추는 놈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아랫배의 기운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기를 쓴다=머리 쪽(상단전)에 모인 기운(기)은 숨과 각각의 움직임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제어(control)해준다. 일본 사람들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손의 움직임에 탄복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은 섬세한 몸짓에 능하다.

나 홀로 추는 춤=자신의 움직임을 은근히 바라보며 느끼는 모니터링에 의해 몰입할 수 있다. 춤 잘 추는 가수 박진영이 그렇게 춘단다.

여럿이 추는 춤=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동화(identification)하게 되면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출 수 있다. 이어지는 난장트기에 대한 설명을 보라.

◆발림, 마임과 춤이 하나다

우리 몸짓의 고유한 특성은 마임과 춤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춤(dance)이 추상적인 몸짓을 보여준다면, 마임(mime)은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몸짓이다. 주로 판소리에서 쓰는 용어인 발림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된다. 곱추춤이나 문둥춤·학춤과 같이 마치 연기를 하듯이 춤을 춘다. 흥과 생각을 동시에 담으며, 이야기나 대화 속에 쉽게 끼어든다. 전통적으로는 동네에서 추는 보릿대춤이나 공옥진의 병신춤이 대표적이다. 풍물패가 만들어 내는 난장에 곱추춤을 추며 끼어드는 동네 아저씨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우리 모두를 웃음 짓게 한다. 공옥진이 살풀이를 추면서 치맛자락을 살짝 끌어 올릴 때 짓는 표정은 어느 연극배우 못지않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춤 역시 춤 속에 연기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서구의 엔터테이너와 다른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난 스스로를 '발림배우'라고 부른다. 내 작품에는 언제나 춤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추상적인 몸짓을 할 때도 춤이 들어가면 관객은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 저번에는 흥이 깔려 있어 그저 함께 들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석이조다 어려운 주제도 전달하고 흥을 낼 수도 있으니.

[조성진의 몸짓 이야기] 우리 몸짓은 마임+춤…추상과 묘사의 결합체

◆난장트기

포크댄스와 같은 서양의 전통적인 민속춤과는 달리 우리의 민속춤은 강강술래와 같은 특별한 정황에서 만들어진 춤을 제외하고는 서로 손을 잡거나 발을 맞춰 추지 않는다. 마치 요즘 나이트나 클럽에서 추는 춤과도 닮았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난장문화'라고 부른다. 자기 좋을 대로 추지만 다른 모든 이들과 어울린다. 이것은 다문화적인, 매우 진화된 몸짓이다.

난장은 작고한 백기완 선생의 말을 빌리면 만드는 것이 아니고 동이 트듯이 트는 것이다. 앞서 벌어진 판이 큰 감흥을 불러일으켜 흥이 오르고 신이 나게 되면 비로소 난장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난장트기는 어떤 감동적인 사건이나 기획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월드컵을 응원하는 붉은악마나 촛불집회 또는 태극기집회에서도 역시 나름의 난장이 벌어진다. 어떤 이는 여럿이 있는 가운데 나 홀로 난장트기를 하기도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떠나는 남한 쪽의 버스를 바라보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북한 여성을 보았다. 재회의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바라보는 이들도 정작 춤을 추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함께 춤을 추었을 터이니 그것 역시 난장이다. 요즘은 난장이 벌어지지 않는 김빠지고 알맹이 없는 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가끔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을 틈타 거실에서 용을 쓴다. 나 홀로 난장을 튼다. 

<마임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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