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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人사이드] 대구은행 첫 외부 영입 여성임원 이은미 상무 "상사는 능력 갖춘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고하도록 이끌어야"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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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상무는 한국과 외국의 직장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직원의 개별적 능력이 뛰어난 반면, 외국은 평범한 편이다. 그런데 외국의 성과가 한국보다 뛰어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협업 때문이다. 외국은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DGB대구은행 제공〉

지난달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는 시청률 16%를 기록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의 한 광고대행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주인공 고아인은 계열사 최초 공채 출신 여성 임원에 오른다. 대구에서도 한 여성이 은행 임원 자리에 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올 1월 DGB대구은행 최초의 CFO(최고 재무책임자)출신 외부 영입 여성 전문가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이은미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DGB대구은행 경영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장기화한 경기침체로 DGB금융 계열사 다수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구은행도 향후 실적 개선이 절실하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 상무가 선택받았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점에서 DGB금융그룹 수뇌부가 재무관리 전문가인 이 상무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본점 PB센터 상담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부하직원의 사고(思考)를 위해 질문하는 상사

이 상무는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스타일이다. 그는 직원들이 자료를 가져오면 항상 '왜'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 안건을 이사회에 왜 올려야 하는지를 묻고 직원들이 명확한 대답을 하길 원한다. 이 상무의 질문은 부하직원들이 조직이 정한 관습에 매몰돼 본인 판단이 아니라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치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상무는 "정답을 바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다. 상사가 원하는 정답에 부하직원이 맞추게 되면 더 이상 사고(思考)하지 않고 상사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며 "금융 관련 데이터가 모이면 인공지능(AI)을 통해 정확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기술적인 것은 이미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기계는 인간처럼 생각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의 일과는 명상과 요가로 시작한다. 매일 오전 4~5시에 일어나 잠시 명상을 한 뒤 10분간 요가를 한다. 이어 30분간 조깅을 하고 오전 6~7시에 출근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거시적 관점에서 미국 동향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내 상황을 짚어보려고 노력한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나름 점쳐보고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까? 나빠질까? 그 안에서 은행 경쟁력은 뭐가 있을지 수없이 곱씹어 본다"고 했다.

이 상무는 몸이 파김치가 돼서 퇴근한다. 퇴근 후 일상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녁엔 주로 책을 읽고 유튜브를 시청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TV를 시청하고 주말엔 인터넷 쇼핑을 즐긴다.


통역사→재무전문가 변신
"어릴때 외국생활로 영어 익숙
큰 세상 접하고 싶어 재무 공부
미래가치 내다보는 CFO 흥미
SC·도이치·HSBC서 역량 키워
유학 떠나 홍콩대 MBA도 취득"

좋은 팀워크서 성과 나와
"조직의 관습에 매몰되지 않도록
직원에 "왜죠" 끊임 없이 질문
외국회사 커뮤니케이션 중요시
상사가 원하는 답에 맞추게 되면
본인 판단 없이 눈치만 보게 돼"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에도 하고픈 일 찾아 헤매

드라마 속 고아인이 지독한 '워커홀릭'이 된 건 가난했던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아 고모 손에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탓에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참고서로 공부하며 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성장했다. 차가운 겉모습과 달리 성공하지 못하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고 믿는 여린 측면도 있다. 고아인은 불안 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린다. 퇴근 후엔 술과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든다. 투약 부작용으로 몽유병 증세도 있다.

이 상무는 유년 시절을 미국 중부 캔자스주에서 보냈다.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낯선 땅으로 갔다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12세)에 귀국했다. 영어는 교사보다 능숙해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다. 어릴 적부터 키가 컸던 덕을 봤다. 현재 그의 신장은 170㎝다.

수학에 재미를 느껴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혼란을 겪었다. 오히려 부전공인 '경영학'에 흥미를 느꼈다. 그렇다고 전과나 편입을 하지는 않고 그대로 졸업했다. 이후 이화여대 통역학 석사과정을 거쳐 전문통역사로 한동안 일했다. 어릴 적 해외 생활로 단련된 영어회화 실력을 십분 활용하고 싶어서였다. 이 상무는 "사실 대학 때까지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무작정 유엔에서 연설할 수준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래서 통역학과에 진학했는데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통역사로 일하게 되면서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 재무도 공부하게 됐다. 29세가 되던 2002년엔 삼일회계법인에 취업해 금융 부문 세무본부에서 일하게 됐다. 맡은 업무가 과거지향적이라서 미래가치를 내다보는 CFO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4년 뒤인 2006년 주식 애널리스트가 됐고, 이듬해 스탠다드차타드(SC) 금융지주의 전략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일은 몰린다

이 상무의 지난 흔적을 들여다보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는 것을 우대하는 한국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이 상무는 "한 가지 업무를 오랫동안 한다고 모두 잘하는 건 아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게 중요하다. 직장에서 매일 자정까지 치열하게 일하면서 골치 아픈 일을 많이 해결했다.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그 보상으로 싱가포르에 가게 됐다"고 말했다.

2008년엔 SC싱가포르 재무관리부에서 일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여가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매일 오전 3~4시까지 직장에 얽매여 있었다. 글로벌 예산을 담당한 탓에 61개 예산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2011년 귀국한 뒤 도이치은행 서울지점 재무관리부문장을 맡았다. 이때 MBA(경영대학원)에 관심을 가졌고, 5년 뒤인 2016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과 영국 런던 비즈니스 스쿨, 홍콩대 MBA를 거쳤다. 2년간 모든 휴가를 활용해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2019년 귀국해 HSBC서울지점 재무관리부, 2021년 HSBC홍콩 지역본부 아태지역 총괄 상업은행 CFO를 지냈다.

"맡은 일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잖아요.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일도 않고 때가 되면 승진한다고 합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을 때 임원을 찾아가 하소연했어요. 일이 재미있고 좋은데 이걸 왜 자꾸 저한테만 주시느냐? 이렇게 따지니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어요. '일은 되는 사람한테 가기 마련이다. 너한테 가면 일이 되니까 그런 거다.'"

직장생활은 2001년 결혼 후부터 시작했다. 경상도 출신인 남편은 오 남매 중 장남이다. 그는 "남편과는 대학교 2학년 때 만나 8년간 연애한 뒤 백년가약을 맺었다. 사실 남편과 시부모님이 도와준 덕분에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 살면서 동시에 직장을 다니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되면 여러 조건을 재게 된다. 돈을 선택하는 것보단 꿈을 좇는 게 낫더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험난한 일이라도 내가 좋아하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승부수를 던질 수 있지 않으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명언도 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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