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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생生이 만선이다, 출렁이는 기억과 고백…'만선 인생'을 위한 위로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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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집 '생生이 만선이다'에서 삐꺽거리고 막막해도 물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대구여성문인협회장을 지낸 박복조 시인의 6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시간의 층계를 오르내리며 던진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기록'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신이 풀어 놓은 아득한 시간, 그것, 알아보고 싶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한다. '초등 육학년 다섯 가시나들'의 맑고 순수한 물구나무서기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시간 속에서 성장해 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백한다. 동시에 '거꾸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혼자 물구나무'를 서며 '다시 걷기'를 다짐한다.

"(전략) 얼굴 빨개진 초등 육학년 다섯 가시나들 공부는 안하고/ 약속한 듯, 배워주지도 않은 물구나무서기 했지// (중략)// 나 처음 태어나서, 빨간 두 다리 잡히고,/ 번쩍 들려 거꾸로 곧추섰었지/ 온몸으로 울던 울음,/ 북받치는 파열음 그리워, 지금도 거꾸로 세상을 읽는다./ 혼자 물구나무 선다// (중략)// 외길, 아무도 간 적 없는 아득한 숲속/ 큰 알 하나 첫 울음이 터졌지/ 걷고 걸어 처음으로 가는 길/ 희붐한 숨결 피어올라/ 서늘하고 깊은 하늘에// 두 발로 쓰는 시"('물구나무서기 1-두발로 하늘을 걸어' 부분)

생이_표지
박복조 지음/현대시학사/180쪽/1만3천원

박복조 시인 여섯번째 시집 출간
시간의 층계를 오르내리며 던진
존재론적 물음에 대한 기록 담아
"절절히 막혀 있어도 삐꺽거려도
물길따라 실려가는 것이 사는 것"


'물구나무서기'로 유년의 시간을 오르내린 시인은 '부부 와불'을 통해 성년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인생론을 드러낸다.

"(전략)두 부처 나란히 누워있다/ 선 듯 누운 듯 하늘만 바라본다// (중략)// 그저 곁에 있어 주어/ 말없이 어깨에 팔 얹은 채 쳐다보는 눈빛/ 그것이 사랑이라고/ 몸소 서서, 누워서 가르친다// (중략)// 누운 듯 서서 바라보아라 한다"('부부 와불' 부분)

시인은 또 '절절히 막혀 있고 삐꺽거려도 물길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한 삶 속에서 '만선'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목선을 타고 싶다/ 뒤뚱뒤뚱 내 일생 같겠지/ 노 저을 줄도 모르면서,/ 종이배처럼 물결 타며 가고 싶은데/ 아득히 철썩이는 소리뿐,/ 아찔하게 다시 기어오르는 뱃머리/ 그래도 푸른 기쁨은 수평선 바다에 철썩였지/ (중략)/ 물길을 따라 실려 가고 있는/ 이것, 사는 것이다/ 절절히 막혀 있어도/ 물길은 퍼렇고 훤해/ 목선은 가고 있다/ 삐꺽거려도/ 생生이 만선이다"('목선을 타고' 부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대여(大餘) 김춘수에 대한 회상을 통해 그가 가져다 주었던 '시적인 것'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탐색의 시간을 갖는다.

"(전략)너도나도 모두 없는/ 말의 벌판/ 큰 벽에 부딪힌 그 詩/ 大餘는 기어이 내 詩마저 훌뭉그려 놓고/ 꿈꾸라며, 뒷걸음쳐 사라졌네// 한밤 시퍼런 꿈이 고요히 나를 들어 올리는데/ 아직도 꿈이 눈뜨고 있는 시詩/ 하늘땅을 다 흔든다// 태초에 무의미란 말이 있었다면…/ 춘수는 모자를 다시 눌러 쓴다"('무의미의 시1' 부분)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박복조의 시는 우주론과 인생론을 동시에 관통한다. 그의 시는 근원적으로 시인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끝내는 가야 할 태고를 넘나드는 시간예술로써 다가온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원리를 심미적 표상으로 담아낸 빼어난 미학적 사례"라고 평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 시인은 대구가톨릭대 약학대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첫 시집 '차라리 사람을 버리리라'를 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세상으로 트인 문' '빛을 그리다' '말의 알' '산이 피고 있다'가 있고 수필집 '사랑할 일만 남았네'가 있다. 상화 시인상, 대구의 작가상, 국제펜클럽 아카데미 문학상을 수상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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