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은 동북아의 발전적 내일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대국민 통일교육, 보건의료 돌봄사업,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문화사업, 장학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이사장이 자신이 쓴 동북아 관련 책을 들고 있다. |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승율 이사장은 '소문난 야구광'이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야구처럼 생각하고, 풀어나간다. 특히 어렵고 힘든 시기를 만날 때 '9회 말, 경기가 끝나야 끝난 것'을 읊조리며 이 악물고 견뎌 나간다고 한다. 조경 분야 사업으로 일찌감치 안정적 기반을 구축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동북아 평화정착 프로세스 구축에 발을 들였다. 동북아 국제협력을 통한 통일정책을 연구하고, 국제 콘퍼런스와 정책 세미나, 장학사업 등 민간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정착 메신저로 폭넓은 행보를 확장해가고 있다. 그가 걷는 한걸음, 한걸음이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국제관계에 중요한 족적으로 남고 있는 것이다.
◆야구가 가르쳐준 인생
청도 출신의 이 이사장이 야구를 처음 접한 것은 대구중앙초등 친구들과 골목 야구를 하면서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밤늦도록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야구에 '미친' 날들을 보냈다. 5학년 때 선생님의 제안으로 야구부에 가입했다. 물 만난 듯 신나게 던지고, 그라운드를 달리고, 홈런도 빵빵 터트렸다.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대구에는 미 8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사병들이 여가 시간에 야구를 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며 "대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야구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야구 보급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북고 야구반 주장으로 활동한 그는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어릴 때부터 몸으로 체득한 야구의 정신은 평생의 사표로 남아 있다. 이 이사장은 "야구를 통해 배운 교훈은 크게 3가지"라며, "첫째 무조건 감독이 시키고 가르치는 대로 한다. 둘째 규칙과 명예를 존중하고 팀워크를 목숨처럼 지킨다. 마지막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뛴다. 지는 게임을 하려고 해선 안 된다"고 소개했다.
초등 야구부원·경북고 주장까지
몸에 밴 야구 정신 '평생의 사표'
변곡점마다 "9회말 끝나야 끝난 것"
읊조리면서 야구처럼 풀어나가
불교철학으로 늦깎이 대학생활
조경 창업…여의도공원 등 수주
◆절망 끝에 찾아온 반전
다이내믹한 인생이었다. 놀랍게도 인생의 변곡점마다 야구가 있었다. 명문 경북고에 입학했지만 야구와 클럽활동에 빠져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으로 오랫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 고교 졸업 후 8년 만에 불교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중3 때부터 만난 아내와 결혼해 첫 아이가 딸린 가장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혼돈과 실의의 날들이 이어졌다. 희망이 멀리 있다고 느껴지던 그때 운명처럼 다시 야구가 찾아왔다. 캠퍼스에서 후배들과 야구를 하면서 조금씩 인생의 희망을 찾은 것이다. 어두운 표정에 생기가 돌고, 절망 같던 시간이 견딜만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 이사장은 대학 4학년 때 조경 분야로 창업을 하게 된다. 빚쟁이에게 살 집이 넘어가고, 교통사고로 혹독한 시련도 겪었지만 특유의 부지런함과 신실한 경영에 힘입어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서울 여의도공원을 포함한 여러 개의 공원 사업과 대규모 테크노파크 건설사업 등을 수주하며 40대에 안정적 기반을 만들었다.
1990년 中에 사업제안 약속자리
대학 세워 조선족 꿈 돕고 싶단
김진경 연변과기대 설립자와 緣
설립 후원 이어 총장 등 맡아 운영
동북아평화·민족동질감 회복하려
신중한 민간차원 교류·협력 활동
◆동북아 갈등 해소와 민족 동질감 회복
이 이사장은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양상쿤 국가주석의 아들인 양사오밍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약속이 중복돼 '낯선 이'와 합석을 하게 됐다. 이날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칭다오에 골프장을 만들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는 그에게 낯선 이는 대학을 만들어 중국의 과학발전과 조선족 후대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날 만난 분이 김진경 연변과학기술대 설립자예요. 저도 모르게 이야기에 홀연히 빠져드는 경험을 했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그의 모습에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형편껏 약간의 후원을 해야지 했는데, 30여 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습니다."
짧은 만남 이후 그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동북아의 갈등 해소 및 민족의 동질감 회복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이다. 연변과학기술대, 평양과학기술대 설립 후원에 이어 부총장, 총장 등을 맡아 안정적 운영에도 나서고 있다. 또 동북아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하고, 책으로 발간해 자료로 남기고 있다. 특히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을 만들어 통일교육, 보건의료 돌봄사업,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문화사업, 장학사업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북 간 상호 유익한 길 찾아야"
동북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고, 미중 갈등도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이사장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동북아 관계는 무엇일까. "나라별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정부 대 정부는 강 대 강으로 나가더라도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의 길은 좀 더 신중하게 확장해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인인 그는 헨리 나우헨이 쓴 '상처 입은 치유자'의 한 대목을 인용해 자신의 삶과 종교, 철학을 이야기했다. "크리스천 리더십의 처음이자 끝이 되는 핵심은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젊은 날에 제가 겪었던 정신적 방황, 열등감, 좌절감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던 조선족, 고려인 청년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오히려 나 자신이 치유되고 정상화되는 체험을 얻었습니다. 남북 간에 상호 유익한 길을 찾고 또한 그 길이 지속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제가 지켜야 할 최선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구경북, 큰 그림을 갖고 수도권 집중에 맞서야"
'지방소멸' 대응이 대한민국의 과제로 떠올랐다. 대구 237만, 경북 260만명으로 대구경북의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경북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6개 지자체가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됐다. 이 이사장은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 대구경북이 큰 그림을 그리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부산이 가덕도 신공항을 만들고, 부산·울산·경남을 묶어 동남권의 관문으로 성장할 야심 찬 기대에 부풀어 있다. 대구경북도 이에 맞서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안들이 나와야 한다. 낙동강 제방둑을 고속도로화하여 대구·구미·안동까지 이어지는 영남 내륙형 스마트시티 벨트를 만들고, 여기에 T자형으로 대구, 경주, 포항을 연결시켜 신산업 벨트로 만드는 일명 '경포대'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고향 청도의 발전과 관련해선 '미생물을 활용한 첨단 바이오 산업'을 제안했다. 이 이사장은 "청정지역인 청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공기로 거주여건이 좋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낙후돼 젊은 층이 자꾸만 도시로 떠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청도 감의 씨앗이 없고 농작물이 잘되는 것은 미생물이 풍부한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청도에 미생물을 활용한 첨단 바이오산업을 유치하고, 단지화하면 청정한 전원 풍경을 유지하면서 지자체의 세수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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